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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Critique]

2021-12-14
洪啓祐의 『四難譜題』

洪啓祐四難譜題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석사 졸업 김원경

 

四難譜題1761洪啓祐(1710?)金孝大(17211781)印譜 四難譜에 써준 것이다. 사난보는 현재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난보제사난보뒤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 인보가 성책된 이후 별도의 단행본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효대의 인장은 현재 발견된 실물과 인영이 없는 실정이고 槿域印藪에도 실려 있지 않다. 사난보제에서 홍계우가 칭하는 四留軒 金公이 바로 김효대이다. 김효대의 본관은 慶州, 汝原이고, 조부는 金柱臣(16611721)이며, 肅宗繼妃 仁顯王后(16671701)의 조카이다. 글을 쓴 홍계우는 본관은 南陽, 季應, 月南이며, 洪儀泳(17501815)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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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앞, 뒷면


김효대는 자신이 인장을 새기면서 느꼈던 어려움 네 가지를 治石’, ‘寫篆’, ‘刻字’, ‘印紙라고 규정하고, 인보의 이름을 四難譜라고 하였다. 인보 사난보는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글의 내용으로 보아 김효대가 직접 새긴 인장이 실려 있을 것이고, 다양한 전서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만난 柳約(생몰년미상)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약은 1718세기 저명한 전각가인데 季良 李最之(16961774)와 함께 인장을 새겼으며, 중국의 전각가 保硯齋 林本裕(16521753)와도 교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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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첫 장


글에서 홍계우는 김효대가 인장을 대하는 태도, 인장 자체에 대한 효험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信標로서의 기능과 印材, 印文에서 취할 만 한 점이 있다며 효험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효험에도 인장을 벽으로 여기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였다. 글의 마지막에서는 김효대의 인장은 사람들의 평가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이라 극찬을 하였고, 漣水의 시골에 머무르게 된다면 말채찍을 잡고서라도 따르고 싶다고 말하였다. 연수에 대해서는 중국 문인전각가의 시초 米芾(10511107)과 관련된 일화 하나가 있다. 연수는 미불이 知事로 근무했던 지역인데 壽石産地로 유명하였다. 수석 수집이 취미였던 미불은 이 돌에 정신이 팔려 관청의 일을 게을리 하였고 결국 미불의 벗 楊傑이 시찰사로서 미불을 감독하러 갔으나 오히려 양걸마저도 수석에 마음을 뺏겨 미불이 자랑하는 수석 하나를 가로채 돌아왔다고 한다. 홍계우는 이 일화에 빗대어 김효대를 따르겠다고 한 듯 보인다. 또한 玩物喪志에 빠졌던 미불을 언급하면서 정사도 잘 돌보며 자신의 취미를 발전시킨 김효대를 넌지시 강조하였다. 이로 보아 홍계우 역시 인장에 대한 애호가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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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장

* 이미지 파일 내 印章

月南晩樵 : 홍계우의 月南’ + 晩樵

洪啓祐印 : 홍계우 이름

季應 : 홍계우


四難譜題는 조선시대 인장문화와 인장비평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김효대가 문인 신분으로 自刻을 하고 印譜를 제작할 정도로 많은 양의 인장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문인들의 인장에 대한 강한 愛好를 볼 수 있으며, 凌壺觀 李麟祥(17101760) 전각 유파의 인물 중 한명인 '유약'을 언급한 부분에서 당시 인장 관련 교유 역시 왕왕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문인들이 인장 유파를 형성하고 인보를 제작하면서 발전했던 17·18세기 조선 인장문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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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마지막 장

* 이미지 파일 내 印章

與爾同消萬古愁 : 李白將進酒마지막 구절


그리고 기존 문인들의 인장 소재 글에서 인장에 대한 애호, 완물상지의 경계, 전문적인 식견을 드러낸데 이어 이 글에서는 인장에서 배울만한 점을 찾고 그 효험을 강조하였는데, 이를 통해 조선시대 문인들의 인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도 함께 엿볼 수 있다.

 

四難譜題는 본래 김양동, 추사와 그 시대의 전각, 남정 최정균 교수 고희기념 서예술논문집,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4.” 에서 처음으로 일부 공개되었고, 본래 고재식 선생님의 소장본이다. 필자가 석사논문 작성과정에서 김양동 선생님께 자료를 제공받아 원문 전체를 공개, 번역하였다.



202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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