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Review]

2023-05-03
이승희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遊於藝│예(藝)에서 노닐다》


서예의 동시대적 아름다움으로 -


이승희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유어예()에서 노닐다가 한전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지난 429일 막을 내렸다. 그의 작업은 서예의 전통적이고 고유한 사회적 기능인 기록성에 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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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성서공회에서 발행한 1887년 한글성경 최초 번역본 및 이후의 개역개정판 성경의 기록들을 선문(選文)하여 정갈한 한글서체로 필사하는 것을 기본 방식으로 하여, 먹의 농담을 조절하거나 한글 자형(字形)의 일부만을 서사하는 방식 등으로 화면을 전개해 나간다. 화선지의 전후 좌우 앞뒤를 구분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철저히 조형적인 방식으로 성경의 기록을 서사한 작품들을 화선지의 유연함과 투명성을 극대화시켜 설치작업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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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체 외에도 문자화될 수 없는깊고 내밀한 내용들과 기록될 수 없는 기록들을 기록하기 위해 탁본을 새롭게 해석하고 변용하여 탈()문자 혹은 범()자로서의 서예언어를 창안하고 다양한 물성의 매체를 인용하고 운용함으로써, 이승희 작가만의 서예 조형언어로 그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채색할 수 없는 먹을 채색하기 위한 개념적 시도로서, 다양한 판본의 탁본들을 다양한 색채의 비단과 매치시킨 작품 <기록_The Fruit/ver.1-12>(화선지 위에 먹물과 비단, 47×47×12cm, 2023) 시리즈 등은 흥미로운 미술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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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번 개인전은 지난 개인전기록(記錄, The Record)(토탈미술관, 2021)에서 전시된 작업과 연계되어 그 연장선상에서 발전시켰다. 지난 개인전이 종이와 먹 이외의 모든 물질성을 배제함으로써, 서예 본연의 투명성과 순수성을 극대화시켰다면, 이번 개인전은 라디오와 시계, 비단 등의 다양한 매체를 적극 개입시킴으로써, 서예가 이들 요소들과 충돌하여 생성되고 혼융(混融)되는 향취를 전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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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록이라는 개념적 특성상 시간성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 대형 벽시계를 대형 필사본들과 결합시켰다. 비물성인 시간을 물성으로 세심하게 표현하기 위해 채택한 시계는 스페인 노먼사에서 제작한 모던하고 미니멀한 조형의 기성 상품으로서, 노먼 한국 공식수입업체인 산아래 가구가 협찬하였다.

피아니스트인 한세대 김순배 교수는 이승희 작가의 작업에 대해 다양한 물성의 이질적 요소들의 조우와 융합이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고 전하며 투명하고 유연한 화선지에 담긴 다양한 조형언어들이 여러 동시대적 매체들과 혼융되어 벽에 걸리거나 공간을 자유롭게 가르는 공간감 속에서 조형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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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지켜본 한광숙 작가(화가, 파리 1대학 조형예술학 박사)이승희 작가의 에서 노닐다 는 동시대 미술에서 맞이하는 가장 혁신적 서예로서 사색의 길을 열어준 전시라고 말하며 다양한 서예 조형언어로 정형화된 문자에 대한 관념의 틀을 깨고 서예에 잠재된 조형예술의 통로를 열었으며, 가장 근원적인 것을 토대로 하여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동시대 예술가로서의 역량과 잠재력을 드러냄으로써 대중과의 상호간 통로를 제공하는 메신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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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예술대학 이혜경 명예교수(연극학 전공)종이에 쓰여진 문장과 탁본으로 새겨진 기록의 견고함이 대비되어 가려짐, 혹은 사라짐에 대한 철학적 묵상, 깊은 사유에서 길어 올린 형태와 질감, 색채와 농담을 통해 구현되는 이승희 작가의 작품 세계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시간, 미세한 떨림과 우주적 파장이 공명하는 공간이 입체적으로 서로를 반영하고 감싸주며 돋보이게 하는 교향악 같다작가는 유희하는 인간(homo ludens)으로 예에서 노닐었다지만 우리는 그가 노동하는 인간(homo laborance)으로 흘렸을 땀의 무게와 농도를 느끼며 현대 서예의 전위성을 엿보게 된 전시였다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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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 문화연구소의 연구원이자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예술철학 이론가이기도 한 그는 동시대 문화예술로서의 서예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주목하며 동시대 서예(Contemporary Calligraphy)’를 주장하고 이를 몸소 실천한다. 과거와 전통의 재생이나 재현이 아닌 동시대 예술로서의 서예가 실천될 수 있을지 이승희 작가의 작업에 서예계의 반응보다는 타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더 주목되고 있다.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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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遊於藝│ 예(藝)에서 노닐다 - 이승희 개인전

 

전시기간 : 2023년 4월 22일(토) ~ 4월 29(터)

전시장소 한전아트센터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