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Review]

2023-11-13
갤러리 일백헌 초대 영묵 강병인 멋글씨전 <씀>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라피를 개척해 온 대한민국 대표 캘리그라피스트 영묵 강병인 작가의 멋글씨전 <>이 서울 종로구 북촌로 갤러리 일백헌에서 20231018()부터 26()까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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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일백헌 초대전으로 기획한 강병인 작가의 개인전에는 작가가 직접 지은 시와 적은 글을 소재로 한글의 아름다움과 조형미를 드러낸 크리에이티브한 캘리그라피 작품들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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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인 작가는 한 번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수석 큐레이터가 왜 글씨 쓰는 사람들, 서예가는 자기 글 대신 남의 글을 옮기는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나 역시 시나 글 짓는 노력 보다 누군가의 시나 좋은 글귀를 옮기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 평소 고민하던 화두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작품에 사용한 글은 시 2점과 훈민정음 서문 1점을 제외하면 모두 작가의 생각을 글로 옮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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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어제 138x69Cm


전시 주제를 으로 정한데 대해 강 작가는 도대체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글이란 생각을 시각화 하는 것인데 개인이나 사회, 세계 차원에서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기록으로서 쓴다는 것과 예술적 행위로서 쓴다는 것을 구분할 때 예술적 씀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서 전시 주제를 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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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 2가 되고 2는 3이다 200x140Cm


전시 작품 중에는 특히 아크릴로 쓰고 그리는 것을 동시에 시도한 작품들이 주목 받았다. 작가는 서예는 기본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인데, 바깥은 붓으로 쓰고 안은 채우는 방식으로 동시에 그리고 쓴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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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나 137x48Cm


민화가 주로 한자를 문자도로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강 작가는 한글도 민화의 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민화의 문자도를 넘어서서 한글도 기원 문자로서의 가치가 있다, “’’, ‘’, ‘같은 한글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고 형태·형상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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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65x91Cm


예를 들어 목숨 수()’, ‘복 복()’ 자는 민간의 기원이 담겨 있는 한자인데, 한글도 대상과 일 대 일로 대응하는 글자가 있다. 강병인 작가는 ’, ‘’, ‘’, ‘처럼 소리문자인 한글에서 표의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이것을 의미적 상형성이라고 정의한다. 글이 가진 뜻과 소리를 적극적으로 형상화 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그는 그동안 글이 가진 뜻과 소리, 형태를 마주했을 때 어릴 적 풀 먹이던 소나 소나무 같은 작가 자신의 경험치를 대입해 글씨로 형상화 하는 작업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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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 50x110Cm


웃자라는 글은 춤추는 형상을 통해서 즐거움을 나타내고, ‘예수라는 단어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을 그려낸다. ‘황소역시 소뿔을 통해 한글의 상형성을 드러낸다. ‘은 한글의 창제 원리인 천지인(天地人)을 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다. 종성 은 땅에서 뿌리가 자라는 모양으로, 모음 는 생명이 자라는 시간을 내재하고 있는 줄기로, 초성 은 솔잎 모양이면서 아주 오래된 큰 소나무로 그려진다. ‘역시 종성 을 뿌리로, 모음 는 가지나 꽃대로, 초성 은 꽃봉오리로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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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2 34x64Cm


강병인 작가는 한글은 해례본의 제자 철학처럼 자연과 인간의 소리, 자연의 변화 같은 이치를 끌고 온 글이기 때문에 작품 속에도 그 원리를 접목하려 했다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생각들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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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어나다 75.7x57Cm


한편 영묵 강병인 작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글 서예를 시작하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 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 말부터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멋글씨(캘리그라피)를 개척하여 융합과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한글 글꼴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알려 왔다. 한글의 창제 원리를 작품 철학으로 삼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네 삶과 소리를 담아낸 글씨를 선보이며, 소리문자를 넘어선 뜻 문자와 한글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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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墨 43x34Cm


한글의 디자인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확장해온 노력을 인정받아 2009년 한국출판인회 선정 올해의 출판 디자이너상을 수상하고, 2012년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은탑 산업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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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너 있다 30x49Cm


주요 작품으로는 참이슬’, ‘산사춘등의 상표, 드라마 대왕 세종, 엄마가 뿔났다, 정도전, 내 남자의 여자, 남자가 사랑할 때등의 제호와 <의형제> 등 영화 타이틀, 서울시 슬로건, ‘동대문구’, ‘중구’ CI 등이 있으며, 100여 편의 책 제목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현재 강병인캘리그래피연구소 술통대표로 후학 양성에도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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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68x34Cm


그는 해외 활동도 활발하다. 2021년 러시아, 2022년 스페인에 이어 2023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국문화원 초대 전시와 강연을 다녀왔고, 지난 10월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강연과 한글 글씨 수업을 진행했다. 강 작가는 한국어와 한글에 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고, 정말 한글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다, “한글을 배우려는 세계인이 참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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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책을 99x41Cm


20233월에는 20여년 간의 작업을 정리한 강병인의 글씨 묶음집(글꽃, 2023)을 펴냈다. 그는 다음으로 건너가기 위한 작업이었다정리하면서 계획을 세웠는데 막상 실제 작업을 하다 보니 머리에 그려지는 형상을 붓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새해에는 그동안 해 오던 형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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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으로 56x80Cm


오는 11월 말에는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 17만 명이 강제 이주한 카자흐스탄을 방문한다. 지난 31일 창간 100주년을 맞은 국외 최초 한글 가로쓰기 신문 고려일보가 의뢰한 제호 작업을 위해서다. 현지 청소년을 위한 글씨 수업과 강연도 진행할 예정이다.

 

2023.11.13.

한동헌

 

 

<전시정보>

 

갤러리 일백헌 초대

영묵 강병인 멋글씨전 <>

 

전시기간 : 20231018() ~ 1026()

전시장소 : 갤러리 일백헌

(서울 종로구 북촌로 81)

문의: 02-2138-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