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Column]

2017-09-18
성인근의 글씨를 읽다-7

 

일찍 소진(消盡)하는 사람들

 

1.

광고에서 이런 문구를 자주 접한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죽기 전에 꼭 맛봐야 할 음식’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등등. 나는 이런 카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죽기 전에 이런 경험을 한다손 치더라도 한 사람의 삶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음을 이미 알아버렸고, 대중이 이런 문구에 혹할 만큼 자존감이 없고 심심할거라는 일종의 자만심 섞인 상술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의 하나로 빠지지 않는 1994년 작 일포스티노(Il postino)가 있다. ‘우편배달부로 번역되는 이 이탈리아 영화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고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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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Il postino)포스터.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지루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던 순박한 청년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는 칠레에서 망명 온 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느와레)의 전속 우편배달부가 된다. 날마다 그에게로 오는 우편물을 전하면서 마리오는 문득 시가 궁금해졌다. 네루다와의 몇 마디 대화를 통해 시는 메타포, 즉 은유임을 알게 된 그는 일상으로부터 새롭게 보는 눈을 갖기 시작한다. 어느 날 시란 무엇인가를 묻는 마리오의 질문에 네루다가 답한다.


시란 설명하려고 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해보는 것뿐이야.”

 

한산한 바닷가에서 네루다가 읊은 시를 듣고 있던 마리오는 말한다.


이상해요단어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마치 바다처럼 멀미까지 느꼈어요

마치 배가 단어들로 이리저리 튕겨지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바로 은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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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Il postino)스틸컷.


평범한 우편배달부 마리오. 그는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촌뜨기였지만 그가 메타포를 이해는 과정은 사랑과 문학, 세상에 대한 까막눈을 떠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사회주의자였던 네루다의 사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이며, 선거 때만 되면 얼굴을 팔며 표를 달라는 기회주의 정치인을, 값을 얼마 받지도 못하고 물건을 파는 서민들에게 흥정하는 부자를 보고 비판한다. 기존에 무기력하던 마리오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는 메타포라는 렌즈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쩌면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군중에 떠밀려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실, 극중 마리오 역할을 맡은 마시모 트로이시(Massimo Troisi, 1953~1994)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영화 촬영 후반부에는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악화되었다. 제작진은 트로이시에게 촬영을 중단하고 치료를 권했지만 그는 <일 포스티노>를 선택했다. 10주의 영화 촬영을 마무리 하는 날, 그는 영화가 개봉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40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

지루한 적막보다 시끄럽지 않은 소음이 좋을 때가 있다. 라디오 같은 것이 그렇다. 매일 오전 11CBS에서는 <일 포스티노>의 영화음악을 시그널로 사용한다. 나는 가끔 라디오를 들으며 극중 네루다와 마리오, 죽음 앞에서 <일 포스티노>를 선택한 트로이시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다시 조선의 고람(古藍) 전기(田琦)를 향해 옮겨간다. 아마도 이들의 삶이 보여준 모습이 서로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대부가 서화를 잘하면 여러 방면에 조예가 깊은 교양인이며, 그렇지 않은 신분이면 그저 환쟁이에 불과한 시대에 태어난 전기(田琦, 1825~1854). 그는 마치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난 것처럼 추사(秋史)라는 신분을 뛰어넘은 스승을 만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나갈 수 있었다. 추사가 당시 중인 출신 제자들을 훈도하며 남긴 품평록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을 보면 추사가 고람에게 얼마나 큰 애정과 채찍을 주었는지 잘 나타난다. 추사는 전기에 대한 기대가 커서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길 바라는 의미로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어람(靑於藍)’의 의미를 따 고람(古藍)’이란 아호를 지어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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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전기는 추사의 기대를 너무 일찍 충족시켰던 탓인지 공자의 사랑하는 제자 안연(顔淵)이 그랬던 것처럼 스승의 기대를 등지고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추사가 제주에서 9년의 유배를 마치고, 다시 북청으로 귀양 갔다 풀려나온 후 2년 만인 69세 때에 스승을 앞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추사의 애통함은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었던 듯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 다만 추사의 죄안(罪案)에 연루되어 신지도로 유배 갔다가 비보를 들은 조희룡(趙熙龍)이 그의 순정한 용모와 재주가 인멸되지 않도록 전기(傳記)를 남겨놓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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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예서대련, 간송미술관.


전기의 자는 위공(瑋公)이요, 호는 고람(古藍)이니 훤칠하고 수려했으며 그윽한 정취와 예스러운 운치가 흘러 넘쳐 마치 진나라와 당나라 때의 그림 속 사람 같았다. 산수(山水)와 연운(煙雲)을 그릴 때에 시원하고 고요하며 간략하고 깨끗하여 문득 원나라 사람의 묘한 경지에 들어갔다. 이는 그의 붓끝이 우연히 이루어낸 것이요, 원나라를 배워서 원나라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시를 지으면 신기하고 깊은 맛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말한 것을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 안목과 필력은 압록강 동쪽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었다. 나이 겨우 서른에 병들어 집에서 죽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고람의 시와 그림은 다만 이 시대에만 짝이 없을 뿐이 아니고 가히 아래위로 백년을 두고 논할 만한 사람이다. 지난 가을에 내가 남쪽으로 내려 갈 적에 나를 찾아와 이별하기 안타까워하는 뜻을 보이더니, 어찌 그때의 이별이 결국 천추의 이별이 될 줄 알았겠는가.(중략) ! 칠십이나 먹은 늙은이가 서른 살 젊은이의 일을 쓰기를 마치 옛 친구 대하듯 하고 있으니 이것이 차마할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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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石林江亭, 간송미술관.


조희룡은 전기전(田琦傳)의 마지막에서 시 한 편을 헌사하며 그의 짧은 삶과 재능을 못내 아쉬워했다.

 

自子遽爲千古客 자네가 별안간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때부터

塵寰餘債意全孤 인간 세상에 남은 빚을 갚을 길이 없게 되었네.

雖云土壤非情物 비록 흙덩이가 무정한 물건이라 하지만

果朽斯人十指無 과연 이 사람의 열 손가락을 썩혀 없앨 것인가.

 

흔히 요절작가로 칭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국민화가로 추존해 마지않는 박수근도 50을 갓 넘겼고, 이중섭도 40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 신화가 되어버렸다. 세상은 그들에게 천재, 혹은 아름다운 손님 등의 미칭을 덧붙이길 좋아한다. 흔히 천재는 하늘이 그 재능을 질투해 일찍 데려간다는 속설이 있지만, 자신의 재능을 너무도 일찍 소진해버리는 유전적 인소를 타고난 사람들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불태워버린 삶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아이러니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성인근 ‧ 본지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