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Interview]

2018-01-19
이 작가의 思생활, 구지회

 

과거를 알지 않고는 

현대를 살아갈 수 없다.”

 


지난 12월 중순, 지속적인 한파를 기록하던 추운 날이었다. 서울의 옛 골목을 간직하고 있는 이화동의 재미난 벽화와 함께 가파른 계단을 지나 다다른 곳에는 소석 구지회 선생의 수더분한 미소와 따뜻한 차가 글씨21팀을 반기고 있었다.

 

(돌 석)’자를 좋아하셨던 치련 허의득 선생께서 지어주신 호, ‘소석(素石)’은 본래의 것을 지키며 우직한 삶을 살아온 구지회의 인생과 닮았다. 그가 몇 년째 작업실로 사용 해 온 소석화실은 한옥과 양옥의 조화가 독특하게 잘 어우러진 작업실이었고, 소품 하나하나에 온정이 묻어났다. 전통 문인화의 고상한 아름다움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은 분위기를 지닌 그 매력은 쉽게 따라갈 수 없다. 독보적인 독특함을 가진 구지회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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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의재 허백련 선생님의 맥을 이어 조카인 치련 허의득 선생님께 사사를 하였는데, 처음 문인화를 접하게 된 계기는?

 

우선 기본적인 단계로 보자면 사군자와 십군자 그리고 산수, 화조도 등을 배우게 됩니다. 저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그림을 배우던 중, 동아일보에서 공모전을 개최하였는데 그때 문인화 부문이 새로 생겨나면서 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1980년도 전남도전에서 대나무로 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문인화라는 장르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되었죠, 아마 그때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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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치련 허의득(1934-1997) 선생께 받은 가르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형상보다는 뜻을 더 중요시했던 의재 허백련(1891- 1976)은 한국 남종화풍의 대가 소치 허련(1807-1892)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그런 허백련 선생님의 조카인 치련 허의득 선생님께서는 허백련 선생님의 필법을 그대로 전수해 주셨어요. 가르침이 좀 특이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다가 종종 원하는 다른 방향을 연구해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늘 꾸짖지 않으시고 응원해주시며 좀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주시고 다양한 연구방법을 알려주시며 발전하기를 바라셨어요. 다만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엇나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혀를 몇 번 차시면서 안타까움을 표현해주셨죠. 그게 큰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으로 표현하면 무엇이든 인정해주셨습니다. 이러한 교육 방법이 특이하게 다가왔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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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x51 한지에 수묵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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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화동 소석화실이 책에도 소개되어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우연히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곳에서 취재를 나오게 되었지요.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도 찍고 인터뷰를 했어요. 이후 몇 사람을 선정하여 작업실을 주제로 한 책을 만들게 되었는데 소석화실이 거기에 선정이 되었어요. 양옥과 한옥의 독특한 구조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방식으로 다양한 느낌을 주었죠. 이러한 독특한 작업실을 꾸미게 된 것은 지인 중에 한옥을 짓는 분이 계셔서 그분과 많이 이야기를 통해 작업실의 세세한 부분까지 저 자신 나름의 방향으로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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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양화는 수묵 위주의 문인화적 화풍인 남종화풍과 채색 위주의 북종화풍으로 나뉩니다. 현재까지의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현대적인 새로운 화법이 나타나는 것 같은데, 자신의 화풍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저의 뿌리를 보게 되면 치련 허의득, 의재 허백련, 소치 허련, 추사 김정희. 그리고 초정 박제가, 연암 박지원 까지 거슬러 오르며 실학파에 근거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문인화가 실학(實學)의 맥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는 다양한 화풍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들이 무궁무진합니다. 또 직접 경험할 수 있죠. 영국, 미국, 프랑스나 독일 등의 문물과 작품들을 모두 관람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보고 느낀 것들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맥이라는 것과 현대, 두 가지를 모두 잡으려고 하니 어렵긴 하죠.. 어떤 좋은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 현재에 살아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표현 할 수 있죠. 수묵이나 채색을 떠나 전통의 맥을 이어 현대에 있는 지금의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화풍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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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주 문인화 동아리 그림 벗을 이끌게 된 계기는?

 

그림벗1992년 치련 허의득 선생의 지도아래 모임을 갖다가 1997년 창립전시회를 열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 3월 갑작스럽게 치련 허의득 선생께서 타계하시고 그 이후 저와 다른 회원들이 함께 배움을 지속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27살 때부터 광주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과 교감을 하게 되었죠, 그때의 경험으로 연륜이 쌓였고 그림벗을 맡아 다른 회원들과 함께 모임을 이어왔어요. ‘그림벗은 올해 2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27명이 제주에 모여 뜻 깊은 전시회를 열었어요. ‘그림벗은 제가 가르친다고 하기보다는 함께 공부하고 성장해가는 모임이라고 볼 수 있지요.

 

 

Q. 작업실 곳곳, 작품 등에 개구리가 많이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제가 살던 곳이 시골이다 보니 곤충, 동물, , 풀 등을 자연스레 많이 보고 관찰하게 되었어요. 어느 날은 비 온 뒤 풀잎 끝에 빨간 잠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재미났죠. , 무료했던 어느 날은 우연히 개구리를 관찰하고 스케치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발견한 것이 있는데, 개구리가 사람하고 너무 똑같은 거예요. 눈 두 개에, 코와 입이 있고 귀같이 볼록 튀어나온 것이 있고, 앞다리와 뒷다리가 있는 것이 세워놓으면 사람하고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개구리를 의인화를 시켜보자 생각했죠. 제가 술을 먹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것보다는 개구리가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훨씬 재미있겠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저 자신을 개구리의 모습에 투영시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실 이름도 금와산방(金蛙山房)’이라 지었어요. 제 그림이 나타나는 개구리 또는 다른 곤충, 동물들은 아마 자연적인 것과는 좀 다르게 보일 겁니다. 특히 눈을 다채롭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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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x51 한지에 수묵담채

 

Q. 많은 전시회를 개최하셨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나 작품은?

 

질문을 받고 회상해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096, <바람에 길을 묻다 >입니다. 8회 개인전이었는데, 그때 제가 하고 싶었던 화목(花木), , 개구리, 여치 등 평소 하고 싶었던 대상들을 총망라하여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재미난 전시를 기획해보자는 생각을 했었고, 실제로 작품에 임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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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개인전 <바람에 길을 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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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개인전 <바람에 길을 묻다 >

 

Q.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많은 기대가 됩니다. 지금 계획하고 계신 작업 방향이 있다면?

 

요즘 시대의 젊은 작가들은 산수화를 많이 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산수라는 전통에 들어가 모든 것을 풀고 헤집어 공부하고, 또 그것을 다시 현대로 가지고 나오는 것을 계획했고 현재 산수화의 작업에 빠져있습니다. 많이 관찰하고 영감을 받아서 현대의 작업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연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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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시대의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욕심 같아서는 가장 평범한 그림을 그렸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어른부터 어린아이까지 전 연령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천진한 그림을 그렸던 사람. 그리고 항상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의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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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x76 한지에 수묵담채

 

Q. 문인화의 매력에 빠져있는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의 말은?

 

첫째로 열심히 할 것을 당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우리는 우리 것(전통)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알지 않고 어떻게 현대를 살아갈 수 있으며 미래를 짚을 수 있겠어요. 우리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제 길을 잘 찾아갑니다. 또 아는 것을 잊어야 합니다. 버려야 하죠. 알기는 하되, 알았으면 버려야 합니다. 좀 이상하죠? 옛것을 알기도 해야 하지만 또 버리기도 해야 합니다. 아니까 버릴 수 있는 겁니다. 모르면 절대 버릴 수 없습니다. 왜 버리라고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버려야 새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얘길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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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x56x2 금지에 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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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라는 단어의 사전적 뜻은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이다.

글씨21<이 작가의 생활> 인터뷰에서 만나고 온 소석 구지회 선생의 이미지가 그랬다. 어떤 질문에도 그에 따른 답변에는 자신의 소신 외에 다른 것의 섞임 없이 순수했다. 그 소신은 문인화를 애정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고, 그리고 그 마음은 처음 문인화를 시작하던 그때와 다르지 않았으며 순수를 넘어 순질(淳質)함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며 구지회 선생이 말했던 과거를 알지 않고는 현대를 살아갈 수 없다.”라는 말을 다시금 회상하게 되었다. 과거의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본받을 만한 일을 마음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전통으로 들어가 깊이 천착하고 난 후에는 그것을 과감히 내려놓고 다시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낼 것을 기약한 구지회 선생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또 그의 활약과 함께 문인화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학들이 많은 생각과 함께 창작의 향연을 펼치길 고대한다.

 

2018. 1. 19

인터뷰 김지수 기자

 

< 약 력 >

치련 허의득, 소암 현중화 선생 사사

1988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수료

1976 전남도전 입선

1980 전남도전 서예부분 우수상 및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1988 광주직할시 미술대전 대상 및 초대작가 심시위원 역임

1995 대한민국 서예대전 우수상 및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1982,87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1984 ~ 개인전 7

1993 한중미술교류전(북경미술관)

우리시대의 난전(운현궁미술관)

1987 동락전(세종문화회관)

2000 새천년 남도미술 대전 조명전(남도예술회관)

2001 개인전 7(갤러리 상)

2004 일본동경한국문화원 초대전

2009 그림벗회원전 (백악미술관)

한국문인화 대표작가전(수원한국서예박물관)

개인전 8회 소석구지회전 바람에 길을 묻다(인사아트센터)

2011 광주 KBS초청 3인의 변주전

10회 구지회 한옥과의 동행전(일여헌 갤러리)

2013 11회 개인전 쉰여덟 지금” (인사아트센터)

2016 12회 소석 구지회 유희전(인사아트센타)

소석 문인화연구실 운영,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그림벗회 주관, 한국문인화 연구회 회원 광주, 종로미협회원

 

 

과 사이- 현대미술로서 구지회의 필묵筆墨언어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부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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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우리시대 문인화文人畵는 그 중요성과 가치만큼은 문인화의 황금기였던 조선보다 더 크다. 이유는 오늘날 문자영상시대 만큼 전통시대 융복합 문예의 결정체인 시서화詩書畵 가 다시 하나 되어야만 하는 때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발표되는 작품은 별 감흥이 없고, 그래서 시큰둥해지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오늘날은 전통사회 문인文人이 사라진지도 오래되었다. 분화될 대로 분화된 우리시대, 정치도 하고 학문도 하고 동시에 문예도 담당했던 조선의 전방위 인물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필묵筆墨의 현대적 재해석 문제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작품의 형식이나 구도, 소재 자체가 구태의연한 그대로다. 이 시대 문인화는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기보다 수구守舊나 매너리즘의 끝자락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겠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시대 문인화 작품을 보고 시대정신이나 사회성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난감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문인文人이 사회를 주도했던 조선은 시서화 일체의 문인화가 조형으로 소통하는 언어의 주류였다면 문인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는 문인화자체가 시민 대중들에게 소통이 아니라 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와서 보면 사군문인화동양화한국화수묵화 운운 자체가 시세 물정에 따라 그 때 그 때마다 벽에다 또 벽을 세운 것 일 뿐이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더 따지면 이 시대 대중들에게는 필묵 자체가 벽이다. 우리시대 사람들에게 먹 덩어리는 물질物質일 뿐이다. 검다black이상의 어떤 의미도 감흥도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실존은 쏙 빠지고 현지우현玄之又玄으로 우주자연의 오묘奧妙하고 오묘한 도의 광대무변함을 이야기하는 시작과 끝일뿐이다. 좌우지간 전자든 후자든 먹 덩어리로 만들어진 작품은 재미없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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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사를 들어서자마자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먹 무더기다. 용트림하듯 인상적이다. 하늘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지만 먹구름도 아니다. 집이나 산과 같이 어떤 사물의 실체도 아니다. 그렇다고 원형질이라 하기도 그렇다. 무엇인가하고 했더니 작가로부터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벽이다고 한다. 필자가 놀란 것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가의 발언이다. 필자는 먹 덩어리라 봤는데, 작가는 이것을 이라고 말 하고 있다. ‘아니 문인화가 세상을 고민하다니여기서 문인화가에 대한 필자의 통념이 송두리째 깨지고 있었다. 구지회의 신작 <시리즈>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벽, 세로지르는 벽, 이리 저리 얽힌 벽, 지그제그 벽, 대못처럼 공간을 내리 박는 벽 . . . . 벽이라? 공간을 둘로 나누는 것이 벽이다. 벽으로 해서 안과 밖이 만들어진다. 여백도 벽이라는 먹 덩어리로 해서 비로소 그 존재를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화선지가 우주일진데 구지회의 먹 덩어리 한 점은 다름 아닌 바로 빅뱅이다. 우주의 탄생이다. 석도1642-1707, 石濤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에서 말 한대로 태고의 순박淳朴을 깨는 일획이다.

 

태고太古적에는 법이 없었다. 순박淳朴이 깨지지 않았다. 순박이 깨지자 법이 생겼다. 법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한 획에서 나왔다. 한 획이란 존재存在의 샘이요, 만상萬象의 뿌리다太古無法, 太朴不散, 太朴一散, 而法立矣, 法於何立, 立於一劃, 一劃者, 衆有之本, 萬象之根.

 

구지회의 먹 덩어리는 순박淳朴을 깨는 일획이다. 한 획이란 존재存在의 샘이요, 만상萬象의 뿌리다. 더구나 그 시공간은 간단하기 그지없다. 음양의 대비가 극단적이다. 텅 빈 공간에 먹 더미가 둥실 떠 있다고나 할까 극도의 갈필인가 싶으면 흔근한 먹물 속에 빠져있다. 지금 불끈 쥐어짜도 먹물이 뚝뚝 떨어질 지경이다.

이렇듯 구지회의 과 석도의 일획사이는 전통 문인화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전복된 해독코드를 들이대야 풀린다. 그래서 구지회의 필묵조형언어는 전통이자 현대의 접점을 내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문인화하면 시서화일체가 대전제다. 그래서 창작주체가 문인이어야만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구지회는 문인이 아니다. 작품에도 우리가 기대했던 우아한 자작시, 아니 남의 글이라도 좋은 시 한 수 없다.

지금에 와서 보면 문인화수묵화사군자동양화한국화와 같은 그림은 이름이 다를 뿐 사실상 맥락을 같이 하는 하나의 그림이다. 작가를 문제 삼는 문인화는 말 그대로 문인이 그린 그림을 말해왔다. 수묵을 재료로 하는 수묵화는 그야말로 먹그림이다. 사군자四君子는 여러 화목 중 매 이라는 소재를 군자에 비유하여 친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서양화와 대비되는 동양화가 있고, 또 그 중에서도 중국화 일본화와 다른 한국화가 명명되어져 왔다. 동양화 한국화와 같은 이 모든 그림은 방점을 어디에 찍는 가가 다를 뿐 같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 오늘의 입장에서 보면 현대미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구지회의 작업은 문인화사군자수묵화동양화한국화이자 현대미술이다. 그래서 구지회의 그림은 그냥 문인화가가 아니라 우리시대 그림이고 현대미술이다. 다만 유화로 그린 서양화나 설치미술이 아닐 뿐이다. 그런데 지극히 익숙한, 그래서 너무나 고리타분하다고 하는 필묵筆墨을 고수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그 반대편에서 읽힌다는 것이 문제다. 바로 구지회의 반전처인데 끝 간 데 없이, 여지없이 낯설게 필묵을 깨버리는 지점이다. 그래서 구지회 그림의 해독은 조형이전의 필묵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필묵그자체가 그림이 말하고자하는, 작가가 발언하고자 하는 근본을 스스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지회의 필묵은 물질을 넘어 우주에 넘치는 기의 파동이다. 필묵의 윤갈潤渴과 농담濃淡의 극단적인 대비는 그 흐름을 더욱 극적인 스트록stroke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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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경험하는 바 이지만 추상화에서 무제無題또는 ‘Untitled라 붙여놓은 경우가 많다. 이유를 물어보면 작가는 작품으로 말을 해야지 무슨 설명이 필요 한가하고 반문이 돌아온다. 일견 옳은 말이지만 관객입장에서 보면 이것보다 더 무책임한 발언도 없다.

속성상 조형언어는 말 언어와 달리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해진다. 그 중에서 작가가 자신의 조형언어를 작품주제 명제 키워드와 같은 말언어로 풀어주는 것은 다양한 관객 해석의 시발점이다.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매개로 소통疏通하는 실마리다. 다시 말하면 작품주제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작가=작품=관객내면의 저변에 흐르는, 가속도가 붙어, 살아 속삭이는 내밀한 조형언어는 기대할 수가 없다.

문인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가 그리던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냥 문인화라고 하는 통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앞서 본대로 따지고 보면 문인화안에서 어떤 소통의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문인화 자체가 거대한 불통의 존재가 되고 만 것이 오늘이다. 이것은 관객이 아니라 작가가 바뀌기 전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래서 구지회의 벽은 작품속의 벽 이전에 현대미술에서 문인화 자체가 감단해야 하는 벽이기도 하다. 반복되지만 이 시대는 문인화자체가 벽이 된 시대다. 말 그대로 독단이다. 자기만족에 도취된 나머지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 필묵의 독단이다. 하지만 예술만큼 더 한 사회적인 존재가 없다. 사회가 없는 종교, 사회가 없는 철학 생각할 수 없듯, 이런 종교와 철학의 총합의 꽃이 예술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들이 사회와 벽을 쌓는 순간 예술은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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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회 작품에서 전통문인화의 고상한 아름다움이나 문인의 수양 격조 이런 것은 더 이상 기대 할 수 없다. 예컨대 일련의 <표주박시리즈>를 보자. 줄기와 잎의 난맥상 그 자체다. 파필破筆이다 못해 쩍쩍 갈라진 필획이나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멀겋게 갈아붙인 생 먹의 은근함은 혼돈이다. 텅 비었는가하면 완전추상의 농묵이 무겁게 하늘에 드리워져 있다. 그런가 하면 땅에는 개구리가 오색의 꽃밭에서 막 점프를 할 태세다. 또 다른 시리즈에서는 금방이라도 장대비를 쏟아 부을 것 같은 그야말로 용트림하듯 꿈틀대는 먹구름은 벽이 되어 만물이 정지된 듯한 꽃밭을 노려본다. 극단적 조형언어가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다. 이런 갈필의 황량함과 동시에 농묵의 습윤함이 주는 조형미감이란 절대고독이기도 하고 숨 막히는 현실을 그려낸 것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통속적인 문인화에 숨어있는 듯한 구지회 필묵의 끝은 이렇듯 알게 모르게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심장부를 겨누며 찌르고 비틀고 있다. 이것은 바로 구지회가 살고 있는 실존 그 자체이기도 하다.

벽의 다른 말은 불통不通이다. 오늘처럼 우리사회에서 불통을 많이 이야기 하는 때도 없었다. 최첨단 소통기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창조되는 이때 언론에서 사무실에서 국회에서 가정에서 불통 불통 불통을 이야기 하는 것은 역설중의 역설이다. 그래서 구지회의 벽은 확장하면 우리가 앓고 있는 현대사회의 내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현대미술은 작가가 살고 있는 시공時空, 즉 현대사회에 대한 생각과 실존을 그린 것이다. 먹물이든 아크릴이든 플라스틱이든 어떤 도구 재료도 관계없다. 그것이 또 그림으로 표출되든지 글씨로 써지든지 설치로 만들어 져도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문자나 글씨가 서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문자영상이 하나인 시대 한가운데가 지금 아닌가.

더 나아가 구지회의 경우 왜 그리는가는 결국 왜 사는가의 문제와 같다. 예컨대 그의 화업은 농업이다. 농부의 논밭과 같은 것이 구지회의 화선지다. 대지의 밤과 낮, 춘하추동과 같은 우주자연의 움직임에 따라 논밭을 갈아 씨 뿌리고 가꾸고 추수를 하는 것은 화면에 필묵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화면 위 필묵이 음양원리에 따라 공간을 경영해내는 것이 바로 구지회의 그림공간이다. 농사나 화업이나 가장 현실적이면서 가장 우주적인 근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구지회 그림의 문제의식은 가장 우주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데 까지 직통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대상의 재현으로서 구상과 내면의 표출로서 추상이 공존하면서 작가의 실존을, 현대사회를 필획한 것이 구지회의 <벽시리즈>이고 <표주박시리즈>. 작가는 현실에서 느끼는 불통을 다름 아닌 벽으로 표출한 것이다. 하지만 구지회의 필묵은 벽이라는 문제제기나 사회고발로만 그치지 않는다. 동시에 과도할 정도로 텅텅 빈 공간으로 광대무변의 소통을 열어 재끼고 있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필묵의 유희遊戱도 자리한다. 유희를 위한 유희가 아니다. 그래서 벽은 동시에 사이이고 숨통이다. 구지회의 문인화 내지는 필묵어법의 힘은 벽으로 벽을 깨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