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Interview]

2018-12-28
<특집>

 대륙을 이끈 서법가들

 引领大陆的书法家们


|  3편 증래덕(曾來德)  |


 

중국의 서법계가 뜨겁다. 국가 차원에서 서법에 대한 전폭적인 장려정책이 진행 중이고, 서법가들 또한 수준 높은 작품으로 서단을 꾸려 가고 있다. 중국의 서법은 문화혁명의 질곡을 딛고 현재 최고의 존중을 받고 있는 분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중국의 전통문화인 서법을 자신들만의 고유 언어이자 신선한 예술로 일궈낸 일군의 작가들의 영향이 크다.

 

대륙을 이끈 서법가들은 그들이 일궈낸 현대서법계의 역정과 진화의 모습을 작가들의 육성을 통해 들어보고, 우리 서예계에 반추해 보기 위한 기획이다. 각 성()과 도시별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중국의 서법계를 차근차근 짚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우선 중국의 수도이자 전통 서법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베이징에서 뚜렷한 자기 색깔을 가진 네 분의 중견작가들을 만나 그들이 걸어온 길과 예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그 세 번째 순서로 증래덕 선생을 만나보았다. 인터뷰는 성인근 본지 편집주간이 진행하였고, 통역은 안재성 박사(서법학)가 맡아주었다.

 

2018. 12. 28

글씨21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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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山天地五言聯 紙本

 


Q. 개인작업 공간에 대한 이야기

 

20세기 이후에 들어서 중국 서예는 어두운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또 중국 사회도 아주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죠. 이러한 이유로, 중국인들의 삶은 아주 안 좋았습니다. 서예는 부귀의 예술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국가가 안정되고 의식주가 충족이 된 이후에야 서예의 발전에도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20세기 이후 중국 사회가 아주 어두운 시기를 지날 때에, 서예가들은 단지 집안에서 글씨를 연습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봅니다.

그러나 제가 이러한 시기 때부터 창작 작업실을 열게 된 것은 서예의 봄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국가의 명운이 좋은 방향으로 전환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가슴을 열고, 더 나은 창작 작품이 발현될 수 있는 그러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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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大鏞詩 紙本

 


Q. 국가1급미술사와 같은 국가기술사 제도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예술가는 개인의 노동 행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서예는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몇 천 년에 걸쳐 그 정화가 쌓이며 쇠락하지 않고 발전해 온 민족의 예술형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예는 중국인들의 생활에 그리고 문맥에, 혈맥에까지 깊이 침투해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예술은 보호해야 하고 적극 지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한국에는 미술기사, 예술기사 등 국가 지정의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알고 있지만 한국의 서예가들은 오랜 역사에 걸쳐 서예 발전의 전승을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중요 예술에 대한 계승 발전의 노력은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의 국가 1급 미술사와 같은 칭호의 부여는 20세기 이후 국가의 교육제도에 따라서, 문화인들과 예술가들에 대한 존중을 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칭호를 부여하고자 국가는 보호와 존중을 받을 대상을 선정합니다. 그래서 1급 서예가나 혹은 1급 화가와 같은 지정 제도는 이러한 중국의 특수한 상황과 대우에 따라 칭호를 부여합니다.

 

저는 중국국가화원 서예전각원의 원장으로서 국가지정의 이러한 칭호와 대우를 부여받은 것이 첫 번째로 예술적인 측면에서의 성취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고요 두 번째로는 몇 십 년에 걸쳐 제가 중국 서예계를 위해 행한 노력들이나 혹은 학문적으로 예술적으로 한 작업들이 대중에게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칭호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중국 사회가 예술가에게 가장 높은 대우를 부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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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渾詩 紙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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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商隱詩抄 紙本



Q. 국가1급 미술가로서 의무와 책임

 

중국국가화원의 미술가들은 국내를 대표하고 나아가서는 중국의 대표하는 예술가들입니다. 이분들은 먼저 자기의 예술 영역에 있어서 아주 높은 성취를 이룬 분들이고 사회에서 대중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그 자격이 되어서 이 화원 소속의 예술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째로 국가화원은 중국 국가가 중요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양성하기 위함이 있습니다. , 이분들 화가들은 본인의 개인생활에 있어 스스로가 더욱 뛰어나기를 바라고 있고, 더욱 출중해지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욱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번째로 그들은 국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내 및 국제적인 문화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죠.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 있어 대표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영역에 있어 시대의 예술이 발전함에 있어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사회진보와 인류의 문명, 민족문화의 발전에 있어 책임이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측면에서 아무나 쉽게 칭호를 부여해 줄 수는 없습니다. 칭호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 또한 부여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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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甫詩 紙本 2011



Q. 쩡라이더 개인에 대한 호칭의 의미에 대해서

 

한 명의 예술가가 행하는 작업이나 예술 창조는 그것이 꼭 절대적으로 공익의 평판을 얻기 위해 행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예술가는 최종적으로 그의 예술작품과 예술 풍격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와 전체 예술계를 마주하면서 마지막으로 예술계 전체의 그에 대한 평판과 비평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 서예계와 사회는 저에 대해 서로 다른 평판들을 주게 되었는데 저에게 있어 이러한 칭호들은 큰 영예이기도 하며 저를 다각도로 평가하는 말들이 되기도 합니다. 또 저에게 있어서 저를 표현하는 아주 엄격한 가치 평가의 표준이 되기도 할 텐데요. 저는 이러한 칭호에 대해 사실 크게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까지 어떠한 저에 대한 칭호나 직책을 통해서 저 스스로가 크게 만족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는 최종적으로 예술 성취로서 그리고 학문의 성과로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서로 다른 시대의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르게 평가나 비평이 이루어질 수가 있는데요. 저희들도 이러한 평가에 대해 무시할 수는 없죠. 저에 대한 칭호나 평가들은 단지 하나의 부분적인 참조용으로써 또는 큰 동력으로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 대한 온전한 평가를 대변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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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 紙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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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쩡라이더의 작품세계에 대해(본인의 예술풍격이 청 이후 비학영향을 받은 예술 풍격이라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

 

제가 생각하기에 대중과 서예계의 저에 대한 평가는 관중들 개개인의 심미적인 입장에서 저를 바라본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을 말하자면 저는 첩학과 비학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땅히 비학과 첩학을 교차 사용해야 함을 말하고 싶습니다. 비학과 첩학은 중국 서예가 남긴 양대 중요한 유산입니다.

 

과거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조상들은 첩학 위주의 학풍이 주류를 이루었죠. 첩학은 첫째로 서예문화가 형성됨에 있어 여전히 주류였고 큰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청대에 들어서 포세신, 강유위, 우우임 등 서예가들이 비학사상을 창도하기 시작하였고 나아가 비학서예의 지위를 전무후무한 최고의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또 그들의 세대를 잇는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선인들이 이룩해 높은 성취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학의 영향을 받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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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云白雨四言聯 紙本


그리고 첩학 서예는 실용의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서신, 편지, 척독, 수권 등 실용의 기능을 가지고 응용되어 발전되어 왔죠. 그래서 작품의 크기들이 모두 작습니다. 현재의 서예는 순수한 하나의 예술형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많은 작품들이 미술관에 걸리게 되고 큰 공간에서 전시하기 위한 형태로 변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첩학의 영향을 받은 작품은 전시공간을 장악하는데 어려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비학 서예가 주는 무겁고 진중함, 드넓고 강렬한 기세 등은 오늘날의 전시 작품의 형식에 더욱 부합하고 있습니다. 작품 크기를 크게 하여 작가의 내면에 내재된 감정과 상태를 과감히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서예가들 중에 비학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가 드문 것입니다. 만약 큰 글씨를 쓰기 위해 난정서의 글씨를 이렇게 크게 확대한다면 이 또한 현시대에는 맞지 않는 거라 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곧 저의 현재 예술세계에도 부합하는 것이고 20세기 전체 서예계의 조류나 흐름에도 부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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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菊幽蘭五言聯 紙本 2013年



Q. 선생님의 초서작품에 대하여/ 건묵용필법

 

건필(乾筆)로 글씨를 쓰는 법은 제가 대략 10여 년 전부터 연구를 시작해 온 하나의 서예 풍격입니다. 사실 이는 비백서(飛白書)라고도 합니다. 이 비백서는 제가 독창한 것이 아닙니다. 약 이천여 년 전 서한 시대에 채옹(蔡邕)이라는 사람이 비백서라는 것에 대해 처음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비백서는 채옹이 당시 인부들이 벽에 칠을 하는 것을 보고 찾아낸 서예에 대한 느낌과 고뇌를 통해 나온 하나의 용어입니다. 역대 서예가들은 이 비백서라는 것에 대해 각자가 나름의 느낌을 구현해내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적당한 비백서의 구현 방식을 찾지 못하였고 대중들로 하여금 인정받는 비백서로서의 작품이 나타나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백서는 아직까지도 민간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그러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 10여 년 동안 연구와 노력을 통해 이 비백서를 하나의 서예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 현재는 비교적 완성도 있는 비백서로서의 창작 작품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서예계에서도 나름의 긍정적이고 일치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 비백서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상당한 난이도를 요구합니다. 기술적으로 큰 요구를 필요로 하죠. 첫 번째로 매 작품 작품마다 보일 듯 말 듯 표일하면서 중국전통서예의 서사적 기술적 과정을 표현 완성해야 하죠. 이 안에는 붓 안에 먹물 함유량이 적다고 해서 글씨의 무게를 잃어서는 안됩니다또 글자의 선질이 얇아 종이에 먹물이 깊게 투과되지 않음을 느낄 겁니다.


두 번째로 저는 작품의 첫 자에서 마지막 글자가 완성될 때까지 그 안의 기필과 수필, 획과 획 사이의 연결 관계까지, 하나의 기의 흐름으로 마지막까지 써내려간 듯이 완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작품은 똑같은 작품이 다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나 스스로도 똑같은 작품을 쓸 수 없고 다른 이도 똑같이 모방할 수 없습니다. 하나 하나 작품들이 모두 오직 하나로만 존재하는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저의 비백서는 현재 당대 중국 서단에서 큰 호응과 인정을 받는 하나의 형식으로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몇 십 년에 걸친 연구가 어느 한 방면에서 이룩한 성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이쪽 방향에 있어서도 계속된 연구를 해 나아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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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作歌一詞語系列 90x6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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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日華詩 紙本



Q. 선생님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

 

뒤의 그림의 최근에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여정에 대해) 저는 원래가 서예가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제가 화가라도 생각하십니다. 서예가이든 화가이든 저는 서로 충돌이 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미술사를 보면 화가이자 서가로 업을 삼은 예술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걸출한 화가였고 동시에 우수한 서예가였습니다. 예로, 송나라 휘종은 화가였고 또 서예가였습니다. 또 문징명 등도 있죠. 이처럼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화가이자 서가였습니다.

 

단지, 현재 20세기 이후에 들어서 서가와 화가가 더욱 분화가 되었습니다. 각자 독립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실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데요. 만약 화가가 글씨가 안되면 그 작가의 회화는 최종적으로 높은 수준의 작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역시나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書法如畵, 畵以如書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사실 저의 회화 행위도 이 두 가지 용어를 바탕으로 탐색하고 연구한 결과입니다. 제 회화에 대한 대표적 특징을 말씀드리면 저의 초묵회화(焦墨繪畵)에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 끝에 저의 초묵회화는 대중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 초묵회화를 하려면 몇 가지 요소를 구비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중국 전통 서예기법에 있어서 고난도의 모필장악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 아주 농후한 먹으로 화면에 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두 번째는 비백서를 쓸 수 있는 본령을 갖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초묵회화는 주가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는 회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흑과 백 사이에 회색이 가미되는데요 이 회색은 흑과 백 사이의 깊이를 조절하고 화면의 공간을 적절히 채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 번째로 화면의 면적과 구성에 있어 현대서예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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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요소가 더해져 비로소 초묵회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날에 이러한 능력을 구비한 작가가 매우 적다고 봅니다.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초묵회화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저만의 표현방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제 표현방식을 통해 무궁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회화 형식은 주로 사생에서의 모필과 먹을 사용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옮겨다 그리는 것이었죠. 저는 제가 사유하고 창조한 세계를 화면에 담습니다. 제가 창조한 산과 강을 그립니다. 완전히 저만의 방식을 사용해 저만의 언어와 풍격으로 표현합니다. 마침 뒤에 제가 그린 그림이 걸려있는데요. 이것은 채묵회화 입니다. 이 그림은 제가 소속되어 있는 중국 국가 화원의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국가 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창작한 그림입니다.

 

전 세계 60여 개 국가의 미술인들이 실크로드에 가 고찰 및 사생을 하였고 이 그림은 중국 서부 황토고원을 방문하여 그린 것입니다. 황토고원에 가면 이 그림과 같은 유사한 경관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재를 주제로 하여, 일련의 탐색과정을 통해서 나만의 회화 형식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회화 형식이 나오자마자 대중들의 좋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물론, 그간의 연구를 통해 여전히 탐색 중이고 더 나은 창작 작품을 하기 위해 다양한 풍격의 형식들을 시도 중입니다. 앞에 걸린 작품도 서예의 초서와 산수화 형식을 혼합하여 창작한 것으로 검은 획을 보면 덕() 자를 초서로 쓴 것입니다. 제 이름의 래덕(來德)인데, () 자이죠. 산수화를 그리듯이 서사하였습니다. 이 또한 창의성이 있는 작품입니다. 최근 이러한 형식의 많은 작품들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탐색의 과정 중에 나온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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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仙書花事五言聯



Q. 앞으로 진행하고자하는 방향에 대해

 

앞으로 저는 10가지 주제가 있는 10권의 작품집을 출간할 예정에 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집은 저의 소해(小諧)집입니다. 99종의 소해집입니다. 일반적으로 소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 작가가 한 가지 풍으로 보여줬던 것이 대부분이었죠. 한 가지 면모에 글자가 많고 적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소해 분야에 있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이는 소해가 글자가 작아서 창작의 구성에 있어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준비 중인 99종의 소해집은 매 종마다 각각의 표현 언어와 풍격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제 소해 창작 영역에 있어서 구속과 한계를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게 저의 첫 번제 작품집의 주제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대련(對聯)집입니다. 조금 전에 제가 여러분들께 저의 대련집을 보여드렸는데 그것은 저의 초기 작품집입니다. 대련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그 형식이 매우 단조롭습니다. 풍부한 세계를 표현하는데 제약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제 대련집을 만나보시면 매우 풍부하고 다채로운 풍격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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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法小品一組 紙本



작품의 풍격도 다채롭겠지만 형식에 있어서도 창의성과 탐색성이 있는 작품을 싣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나아가 완성도 있는 작품을 하도록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저의 비백서입니다. 조금 전에서도 비백서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비백서만을 담은 작품집이 될 것입니다. 크기가 큰 작품부터 벽을 덮을 정도가 될 것이고요 아주 작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요만한 크기의 작품도 있을 것입니다.


창작 가능한 범위에서 그 발전 가능성과 공간의 미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네 번째는 저의 현대서예입니다. 저의 현대서예에 대한 탐색은 3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현대서예에 대한 탐색에 있어서는 비교적 많은 노력을 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대량의 현대서예 창작 작품들이 있는데 현대서예의 창작과 이념이 결집된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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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維詩 紙本 2009年


다섯 번째는 한자서예조소작품입니다. 한자서예에 대해 창작을 진행하고 이를 다시 창의적인 입체조형작품으로 전환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체의 조형성이 가미된 한자 작품입니다. 서예를 조형화한 작품이죠. 그리고 현재 완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한자서예 건축 작품입니다. 저는 문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원리를 통해 재조합을 진행하고 건축구조로 재창조한 한자서예 건축 작품을 선보일 겁니다. 현재 유명 건축학자들과 협의를 통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현재의 건축물들을 보면, 대부분이 서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중국에 과거의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건축물들이 있었죠? 하지만, 현재는 서양식 건축물들로 대부분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만 보아도 성냥갑 모양의 네모반듯한 건축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모두 서양식 건축물입니다. 그렇다면 동방에 건축물들에 있어 그 신분과 언어를 대부분 잃어버린 것과 같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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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一文字系列 紙本



그럼 우리는 어떻게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저는 서예의 한자 구조가 가지고 있는 언어로부터 새로운 해법에 대한 진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자서예의 형태를 통해 건축구조 공간을 창조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진행하려는 주제이죠.

 

일곱 번째는 초묵회회입니다. 방금 설명드렸죠? 그리고 여덟 번째가 채묵회화 입니다. 색채가 들어가는 회회죠. 아홉 번째는 저의 수묵회화입니다. 마지막 열 번째가 문헌집이 됩니다. 제가 기술한 문헌집들이 있는데 300만 자에 이르는 자료집입니다. 여기에는 저의 예술에 관점과 사상, 그리고 서예에 대한 인문학 논고 등이 실리게 될 것입니다. 현재까지 다수의 이론집을 출간한 경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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倪云林詩 紙本



열한 번째로는 제 시집을 출간할 겁니다. 현재까지 제가 작시한 시가 삼 천여 편에 이르고 장편은 300여 편에 이릅니다. 시집을 같이 출간하는 이유는 오늘날의 예술가로서 시의(詩意)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반드시 예술가라면 예술을 함에 있어 엄격한 견지와 충만된 시적 감성, 자신만의 예술창작세계, 그리고 예술창작에 있어 이론적 지식의 수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완성해나가는 것이, 저의 이후의 작업 방향이 될 것입니다.

 

지금 제가 80년대 출간한 저의 작품집이 있습니다. ,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텐데요. 이 작품집이 출간된 지 30여 년이 흘렀습니다만, 현재 예술 서적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책을 출간할 당시는 중국 서예가 현대서예로 들어서는데 막 새로운 탐색이 시작될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제 작품들을 보면 현재 3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지금의 시각으로 평가를 해보아도 여전히 시대를 앞서가는 현대서예의 풍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 3만 원 정도 하던 책 가격이, 지금은 권당 40만 원 정도에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 저와 같이 그 책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저의 사상과 관념은 쉬지 않고 계속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방금 준비 중인 11부의 작품집은 전면적으로 저의 예술세계의 과정을 개괄하고 정리한 성과가 되고 미래 발전의 방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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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來德(zēng lái dé)


1956년생(62). 쓰촨(四川)성 출생

)중국국가화원 부원장

중국국가화원 서법전각원 원장

중국서법가협회 이사

교육위원회 부주임

중국미술관 전문평가심사위원회 위원

베이징대학 객좌교수; 문화부우수전문가, 국가1급미술사

출판 <쩡라이더서법작품집>, <쩡라이더현대서법작품집>등 작품집

写无尽书》、《曾来德谈艺录》、《书法的立场》、《横竖有理-曾来德文集》、《书法之诗水墨之诗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