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좌담회]

2019-01-10
기획좌담회
·중 서예시장 분석과 대안 모색




얼마 전 국회에서 서예진흥법이 통과되어 그동안 암울했던 한국서예가 다시금 솟아날 수 있는 전기(轉機)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때에 국제서예가협회 중국 주석인 유정성 선생께서 한국작가들의 중국서예시장 진출에 대한 의견을 내었고, 이번 좌담회에서 구체적인 방안과 대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어 더욱 뜻깊은 좌담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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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正成(유정성)

이 안건으로 이야기 나누는 것은 이번이 세 번 째입니다. 우선 중국 서예가 발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중국의 서법 시장도 30여 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시작이 있었고, 흥함이 있었으며, 현재는 하강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70년 말, 80년 초 당시에는 서예가의 작품은 누가 받아주기만 해도 아주 기뻐했으며, 시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82년도쯤, 지인 한 명이 작품 몇 점을 가지고 제게 와서 보여줬습니다.

 

재백석의 새우 그림, 서비홍의 고양이 그림, 장대천의 산수화와 다른 그림 등을 가지고 와서 진품인가 가품인가를 물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문제없는 진품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짜를 만들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 그림을 사온 것이냐라고 물어보니까, 당시 중국 돈으로 400원에 사 왔다고 했습니다.

 

40년 전에는 돌아가신 작가들의 작품만 판매되고, 살아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80년대 중기에 이르러, 86~87년도에 일본 위에티엔이라는 작가와 계공 선생이 중국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했습니다. 당시 계공 선생의 작품을 영보재에서 한 점에 400위안을 받았습니다. 당시 5-6년 사이에 돌아가신 분들 작품이 400위안 정도였습니다. 86년도에 계공 선생님 작품 1점 가격이 400위안 매겨졌습니다. 400위안이라는 가격은 중국 사람에게 아주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에 사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일반 작가들의 작은 작품이라도 일본 돈으로 1000엔 정도였습니다. 제가 그때 일본 작가를 따라온 제자들을 영보재에 데리고 가서 계공 선생님 작품을 사게 하였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영보재에서 바로 다음날 작품을 800위안으로 올렸습니다. 지금 계공 선생의 작품 가격은 몇 십만 위안입니다. 20-30년 사이에 가격이 엄청 올랐습니다.

 

일 세 나라에 서예시장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장은 대개 대중소비에 의존하는데, 일본과 한국 시장은 주로 자국 작가들이 골동품을 많이 선호합니다. 자신의 제자들이 스승의 작품을 사주는 것을 제외하고, 시장이 거의 형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의 서예시장은 경매시장이 잘 형성된 편입니다. 대형 경매장에서는 주로 작고작가나 대가들의 작품이 주로 거래되고, 작은 갤러리에서는 현재 살아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중국의 서예 시장에서 가장 활발한 곳은 산동성과 감숙성입니다. 산동성은 비교적으로 비싼 작품들이 판매되고, 감숙성에서는 저렴한 작품들이 거래됩니다. 왜냐면 산동성이 감숙성보다 경제적으로 좋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감숙성의 창주와 즈보지방에서 중국에서 뛰어난 작가들은 대부분이 거래됩니다. 중국에서 유명한 서예가들 중에 이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감수성은 산동성보다 금융 소비는 낙후되었지만 서예 시장 기반은 아주 좋습니다.

 

2001년도에 제가 감수성에 처음 갔을 때 반절지 한 점에 천 원 정도에 팔았습니다. 비슷한 나이 대에 작가들, 왕용, 손백상 선생님 같은 분들도 거의 비슷한 가격이었습니다. 나이 비슷한 작가 중에도 지명도가 조금 뒤떨어진 작가들은 100200원에도 거래되었습니다. 유명한 곽자서 손백상 선생들도 200원부터 팔기 시작했습니다. 감수성은 서예 시장 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에, 감수성 통우현이라는 지방에는 집집마다 작품을 걸려있습니다.

 

제가 처음 통우현에서 작품 판매전을 했었는데, 작품을 사러 온 사람들의 돈 봉투가 두툼했습니다. 집에 보관해 오던 오 원짜리 십 원짜리 돈을 가져와 작품을 사러 온 것입니다. 만약 1,000원짜리 작품을 샀는데, 다른 사람이 1,200원 준다면 바로 팔아넘겨요. 200원 남기고도 거래를 합니다. 2007년도에 퉁우이현에 화랑이 몇 십 개가 있었습니다. 그때 성장님과 한담할 기기회가 있었는데, 구분 말이 우리 현에 화랑이 오 십 개가 있으면 최소 백오십 명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화랑에서 일하는 종업원도 있어야 하고, 표구사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라고 했습니다. 당시 인구가 2-3만 명밖에 없는 작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길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 현에 서화 판매가 번창하면서 지금은 화랑만 1,000개가 되었고, 인구도 십몇 만 명 정도로 늘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문화부에서 통우이현을 서예지향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지금 저와 같은 레벨의 작가 작품들은 한 점에 몇 만 원에 팔리기도 하지만, 너무 비싸기 때문에 잘 팔리지 잘 팔리지 않습니다. 반면 젊은 작가들은 몇 백 원에도 팔기 때문에 잘 팔립니다. 100원이나 200원의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팔아서 기초 자본을 마련하고, 그것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해 갑니다. 산동지방과 감숙성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청년작가들을 양성하는 서예 시장이 많기 때문에 전업 작가로 생계가 가능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작가들은 대개 교육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교나 사설학원을 개설하여 생계를 해결하는데, 중국은 이렇게 서예 외적인 방법을 살아가는 서예가는 비교적 적습니다. 중국의 서예 시장은 서예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한국과 일본에도 참고할게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올해 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작가들의 중국 서예 진출을 제의했던 것입니다.

 

중국은 2005년도까지 가장 왕성했는데, 이때는 예물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예작품이 선물이나 뇌물로 쓰였던 것입니다. 근자에 중부에서 부패 척결을 내세우면서 지나치게 높은 작품 가격은 정상으로 조정이 되었는데, 일반 작가들의 작가들은 본래 가격이 그다지 높지 않기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 작가들이 경매시장에 진출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면 경매 회사들이 작품 가격이 높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 거래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싼 작품은 팔려봤자 수수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요즘 젊은 작가들은 경매회사나 화랑보다 인터넷 경매를 많이 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경매보다도 위쳇을 이용한 위쳇 경매를 많이 하는데, 북경 유리창에 있는 행단미술관에서 하는 행단위쳇경매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젊은 작가뿐만 아니라 저나 왕용 같은 영향력 있는 작가들이 함께 경매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나 왕용 같은 작가는 위쳇 판매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젊은 작가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가격을 높이 책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작품을 출품하여 가격을 낮춥니다. 그래도 이 경매에서 명가 작품의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고 주목하게 되면서 젊은 작가들 작품이 덩달아 올라가게 됩니다. 이같이 한국에서도 명가는 작은 작품을 출품하고 젊은 작가들은 좀 큰 작품을 내놓아 함께 명가와 젊은 작가들이 함께 경매에 참여하는 방법은 어떨지 고려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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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동(金洋東)

우리나라에 서예 시장..., 시장이라는 것은 소비가 형성되지요. 그런데 그 소비가 어떤 성격의 소비인가가 중요합니다. 즉 돈을 주고받는 거래의 소비인가, 아니면 그냥 도덕적으로 교환하는 소비인가? 조선시대에는 거래를 하게 되면 상인으로 천시했습니다. 더구나 서예는 선비들이 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더 중시되었는데, 그러다가 일제시대가 되어 추사의 서예가 활발하게 거래되었습니다.

 

그것은 찾는 사람이 있고, 작품이 귀하니 값이 형성되었지요. 그러다 광복 이후 국전이 생겨나면서 한국 서단이 생겨나게 되었죠. 그러나 역시 한국에서도 돌아가신 분들의 작품은 거래가 되었지만, 산 사람들의 작품은 대 원로작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배우는 문도들에 의해서 스승의 작품을 사드리곤 했지요. 그리고 80년 대 이후 90년 때 까지 경제발전으로 부가 축적되니까 글씨가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도 마찬가지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돌아보지 않고 원로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특히 2010년 이후에는 한국경제도 분화되고 급격히 문자 환경, 문화의 미적으로 보는 관점이 변화가 많았습니다. 세대가 교체되면서 한자를 모르는 세대가 정계, 제계를 주름잡다 보니 한자서예는 자연스레 인기가 떨어지게 되었고, 그중에 반성적 의미에서 중국 경제의 부흥과 더불어 중국과의 관계성에 의해서 중국 문화를 눈여겨보던 관점 중 하나가 서예였지요. 그것은 서예의 희망이었지만, 대중의 관심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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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건(金鍾鍵)

변화 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말씀드리자면, 그전에는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도구로서 캘리그라피를 찾았었고, 지금에 와서는 일반인들이 손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 취미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펜이 아닌 붓펜을 쉽게 사용을 하는 거죠. 한글에서는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고체 스타일과 궁서체 스타일, 민체 스타일 등을 배워서 자신의 글씨를 만들어내는 거죠. 전에는 디자이너가 쓰는 하나의 도구였다면 지금은 취미로서도 하고, 최근에 와서는 나도 작가가 된다는 의미에 작품으로서의 글씨를 배우기도 합니다.

 

몇 년 전부터 또 한 가지 주목할 사항은 글씨를 하나의 힐링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먹을 갈고, 글씨를 쓰고, 요가를 하고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활용하는데, 지금 이 공간이 바로 그러한 공간입니다. 외국인들이 그런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은 중국과 일본에서 교류전을 하고 있는데요. 중국 북경중앙미술학원 디자인과 교수랑 전시를 하고 싶은데,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그러면 한글 디자인인 것 같습니다. 한글 글꼴에 대한 다양성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호남미술사법대에서 교류전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전통 서예가 타이포그래피 캘리그라피가 모여서 중국과 교류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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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명(余泰明)

오늘 우리가 모인 것은 서예가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 서예 시장이 아주 활발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정말 어렵기만 합니다. 어제 국회에서 서예진흥법이 통과되면서 기대를 가지고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00년 이후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비과정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북경에 있는 집값이 오백 배 이상 올랐습니다. 그리고 서예 시장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활성화가 되었고, 치바이스 작품가격이 오르다 보니 청년작가들 작품도 함께 올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3년 전부터 연말에 페친들에게 이벤트를 합니다. 페이스북에 일 년 동안 활동을 하고, 저를 알고 있는 페친들에게 인터넷 경매를 합니다. 어떤 때는 높은 가격으로 낙찰이 되고, 어쩔 때는 낮은 가격에 낙찰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면 현판, 기념비를 만들게 되면 작품비 면목이 없습니다. 돌이나 시공비는 책정이 되는데 글씨를 쓴 것에 대한 작품비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중국 사람의 중국 사람 작품을 사게 되지, 한국 사람의 작품을 사진 않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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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흔(葉欣-이에신)

중국 사람들도 대개는 자기 지방의 뛰어난 작가 작품만 삽니다. 전국적으로 다 잘 팔리는 사람은 손에 꼽힙니다. 중국 시장도 한국작가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각각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오리지널 시장에 형성되지 않은 작가들이 많습니다. 어떤 작가는 시장에 걸면 잘 안 팔리는데, 자기 글씨를 좋아하는 사업자 한두 사람이 있으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장을 무시하는 겁니다. 그러면 또 비싸게 팔게 됩니다. 그런 현상이 많습니다.

 

사실상 사람들이 작가들의 위치, 활동력 등 종합적인 것을 보고 구매하지 작품만을 잘 썼다고 팔리지 않습니다. 중국의 모든 작가들은 경매에서 시작할 때 0원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 표구해놓고 20원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표구비도 나오지 않습니다. 안 사더라도 자기 돈으로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작업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유정성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한국작가들이 이번에 경매장에 들어가는데, 자기 돈 아니면 주변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라도 작품을 사라. 그래야 활성화가 될 것이다. 진출하려면 너무 예술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개인전 할 때 작품도 보면 자신의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작품과 팔고 싶어 하는 작품이 금방 보이잖아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매에 내놓았을 때 그림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양식이 필요하고, 큰 작품보다는 소품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일단 시작을 해보고 여러 번 진출해야 할 것입니다. 여초선생님 작품은 중국에 많이 진출하잖아요. 가끔 보면 여초 선생님 작품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중선생을 우리들은 잘 알지만 중국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얘기해도 사는 사람,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구당 선생님도 거의 진출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초정 선생님도 잘 나가죠, 이렇게 중국에 진출하려면 젊을 때부터 많이 나가고 알려야 합니다.

 

2019. 1. 10

글씨21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