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Interview]

2019-07-04
이 작가의 思생활_심은 전정우

 

자신만의 서예세계를 구축한 서예가

심은 전정우

 


어린 시절 학교근처 
미군부대에 배치된 헬리콥터는 어린 심은의 눈에는 그저 신기한 선망의 대상이었다이런 헬리콥터를 특별활동시간에 서예반에 들면 탈 수 있다는 얘기에 서예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그렇게 얼떨결에 시작된 서예와의 인연은 지금의 심은 전정우를 탄생시켰다심은 선생은 농필천자문심은체문자추상작품 등의 작품을 선보여왔다이는 단순히 법고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핵심인 철학과 미학을 통해 자신만의 서예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1987년 3월 동아미술상과 9월 제6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을 수상한 심은 선생의 당시는 최고의 엘리트만 근접할 수 있었던 삼성그룹 비서실에서의 근무를 뒤로하고 서예에 전념하기로 한 그 다음해이다직장생활을 병행하며 퇴근 후 공부를 하는 것은 늘 시간에 쫓기게 되었고 그러한 공부는 심은 선생의 성에 차지 않았다이후 과감히 서예에 몰두한 그는 영광스러운 성과를 얻은 것이다.

 

얼떨결에 시작된 서예 그리고 푹 빠져 지내게 된 초중학교 시절서예를 향한 과감한 선택이 보여주는 심은 전정우 선생의 생활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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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까지 붓과의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초등학교 때 처음 글씨를 써보니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것이 중학교 시절까지 내내 이어졌지요.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에는 공부 때문에 서예를 잠시 놓았다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글씨를 쓰게 되었어요. 늘 서예에 대한 생각을 하던 차에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때에 최고의 선생을 찾아가자는 생각에 여초선생님을 만나서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6개월 정도 직장생활과 함께 서실을 병행하며 공부를 하던 중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옮긴 직장은 밤 9시 넘어야 일을 마칠 수가 있었어요. 그 당시 여초 선생님께서는 오후 5-6시쯤이면 서실 문을 닫으셔서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0여년을 직장 때문에 서실에 다니지 못하고 혼자 취미삼아 연습하는 정도로 공부를 했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직장을 관둘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서예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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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동아미술제 시상식 - 미술상 수상


Q. 여초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해

 

여초 선생님께 사사 받기 전까지 어떠한 인연은 없었어요. 다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터득했던 것이, ‘무엇을 배우던 최고의 스승에게 배움을 받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깨달은 바를 일기장에 적어놓았어요. 그 당시 필방을 통해 서예를 배울 수 있는 스승을 추천받아 6개월 정도 선생님을 찾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일중 김충현 선생님과 여초 김응현 선생님을 알게 되었는데, 일중 선생님께 배우면 서예가로서 출세를 할 수 있고, 여초 선생님께 배우면 서예를 연구하고 공부하며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초 선생님은 당시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학구열이 있으셨고 근면성실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신세계, 한마디로 선비정신을 그대로 지키셨던 분입니다. 또 일중 선생님께서는 그 당시에도 서단을 위해 활동하는 최고의 원로서예가였지요. 그때 저는 출세하려고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해봐야겠단 생각에 여초 김응현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6개월의 가르침으로 응용하여 지금까지 공부했어요 그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지요. 하지만 꾸준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던 것은 불행이었습니다. 이후 직장생활을 관두고 여초 선생님께 다시 사사 받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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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국제서법예술연합 현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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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에 안평안견창작상을 수상하여 초대전을 개최하는 소감은?

 

이번에 안평안견창작상 수상자로서 초대전을 개최하는 것이 10번째 전시입니다. 첫 개인전시 때문에 모두 기억이 나고 특별합니다. 열 번째 전시를 맞았는데 이번에는 ()안평안견현창사업회에서 초대를 한 것이기 때문에 타 장르의 예술가들이 많이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것은 서예도 미술의 한 파트로써 다른 예술가들이 보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전시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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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古尋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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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동아미술제 미술상 수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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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동아미술제 수상작품 앞에서

구당 여원구 선생(우)/ 심은 전정우 (좌)


Q. 2년 전 인천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심은 혼용체 120체 천자문을 선보였는데..

 

2004년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던 개인전에서는 순수서예와 캔버스를 응용한 회화 작품과 또 서예와 조각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인 후 스스로가 어느 정도 공부가 된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이후 다음에는 어떻게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두어 달 하게 되었어요. 고민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제가 항상 나름대로의 테마를 정해서 공부를 해온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2004년 전시가 끝나고 정한 테마가 바로 천자문이었어요. 천자문은 1,000자가 다 다른 글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큰 공부가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천자문을 10년간 연습해서 5체의 천자문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작해보니 연습해서 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 글씨의 기본이 되지 않고서는 천자문을 쓴다는 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닙니다. 10년을 바라보고 시작했는데 한 번 쓰고나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다시 쓰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지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습을 얼마나 했냐고 질문하지만 720개의 천자문을 쓰는데 720번을 썼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혹여 틀리더라도 다시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써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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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도 말레시아 新明日報 주최

 '국제 화문서법새'에서 국제부문 특우장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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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開土大王碑 千字文 70x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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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시리즈2(群像) 35x35


Q. ‘하나에 담긴 철학을 말한다면?

 

글씨라고 하는 것은 스킬이라고 하는 기능 면도 있지만 정신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부터 서예는 사대부, 소위 선비정신이라고 하는 선비들이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이 현대에는 예술로 승화가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선비라고 하면 첫 번째로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하면, 바로 선비정신입니다. 부정부패를 한다든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글씨를 쓰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올곧은 정신이 바로 서예정신입니다. 그러니 서예라고 하는 것은 그 정신적인 무념무상, 자기의 생각조차 없는 세계입니다. 그것은 저는 선의 경지라고 합니다. 선의 경지에서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합니다. 생각이 많아진다면 글씨는 흐려질 것입니다. 자연미도 떨어질 뿐 아니라 인위적이게 되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자연이라고 합니다. 본래의 것. 자기를 잊은 상태에서 나온 선, 그것을 다른 말로 획이라고 하는데, 누구든지 그으면 선이 되지만 획이라고 한다면 그사람의 생각과 철학, 관념이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획을 본다면 그 사람의 정신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글씨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선의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획의 예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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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작품 앞에서 심은 전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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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필천자문 앞쪽 일부



Q. 요즈음 연구하는 작업에 대해

 

저는 테마를 잡아서 공부를 합니다. 글씨와 같은 그림, 그림 같은 글씨, 이게 조형성으로 보았을 때 서화의 동원이라는 근원을 찾다보면 글씨 자체가 추상입니다. 그래서 그림하고 어떻게 접목을 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일부에서는 반서반화다. 즉 반은 서예이고 반은 회화라는 것입니다. 문자 추상은 서양화의 남간 선생, 동양화의 김기창 선생 또는 고암 이응로 선생께서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들의 작품세계라는 것은 문자를 원형元型화해서 회화로 표현한 것입니다. 문자에 뜻이 없고 그냥 회화작품입니다. 문자를 원형元型 했기 때문에 문자추상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게 아닙니다. 서예를 하기 때문에 서예의 글자를 가지고 회화성을 표현하고 또 그 회화를 서예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은 서예고 반을 회화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3년에 한 글자씩 테마로 잡아 작품을 합니다. 처음에는 고를화(), 그다음엔 없을 무(), 그 다음엔 무리 중() 그리고 얼굴 면()을 했습니다. 그리고 금년 1월부터 사람 인()으로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자들을 선택한 이유는 현시대에 국내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끊임없는 갈등구조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아름다운 동행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큰 테마 속에 한 글자, 한 글자를 맞추어 작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씨라는 것은 선, 획의 예술입니다. ‘획을 어떻게 더 레벨 업 시킬 것인가?’ 그리고 문자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해보니, 자기 인생에서 나오는 지향목표와 현재 공부하는 것이 합쳐져 나오는 것이 창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지향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120서체라는 것을 조금만 그 시대 상황에 맞춰 변화시키면 자기만의 창조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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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예에 대한 목표는?

 

서예도 어떤 미술이라고 하는 큰 장르 속에 하나의 파트라고 봅니다. 서예는 별개의 작품세계라기보다 전반적인 미의 세계로 봤을 때 서예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예술세계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저의 작품세계가 서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역을 더 넓혀야 한다는 잠재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은 과정일 뿐입니다. 앞으로 나가려는 세계는 획이라고 하는 선의 미감을 어떻게 해서 국제미술시장에서 승부 볼 수 있느냐 하는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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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예진흥법에 대한 견해는?

 

서예진흥법이 통과된 것은 굉장히 환영할 일이며, 서예발전을 위한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너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우리 서계계의 단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는 협회나 법인 등 단체가 많습니다. 서예진흥법 행정에 관한 일들은 전문 행정가들이 잘 수습해야 하며 서예가들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쌓으며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서예가들이 전부 진흥법에만 쫒아가게된다면 본질이 흐려질 것입니다. 서예의 진흥을 위해 응원을 하되 각자의 위치에서 다투지 말고 큰 대의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서예계는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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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후배 청년작가들에게 들려줄 조언은?

조언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 공부하는 사람, 10년 공부한 사람, 20년 공부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그 부류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라고 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전을 하지 않으면 작가보다는 아마추어라고 생각합니다. 서예가가 아닐 것입니다. 작가(作家)라는 것은 하나의 터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서예가로 자칭하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서예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지요. 예를들어 자전을 보고 그대로 연습하여 입선이나 특선을 했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공모전에만 치중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모전은 그저 시험 삼아 내보는 것이지요. 제 생각엔 최소 2년에서 10년은 바라보고 주제를 잡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많은 청년들이 현재 눈앞에 있는 작품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청년작가전이라고 해서 여러 번 다녀봤는데 지금의 작품만 어떻게 꾸밀까하는 생각이 꽉 차있는 듯했습니다. 공부는 짧더라도 자기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결과는 나오게 외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 미감을 곁들인 선질이 나와야 합니다. 너무 꾸미기만 하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며 깊이 있는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019. 7. 2

인터뷰 김지수 기자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과 

심은 전정우의 예술세계

 손 형 우 (철학박사예술기획·평론가)


"길은 다님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장자제물론에 나오는 글이다. 20131월 이후 심은 전정우의 예술세계는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대로 이루어진다. 필자가 보기에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처럼 심은 예술세계의 길을 적절히 드러내는 말은 매우 드문 듯하다. 그러한 까닭은 다음에 있다.

 

필자가 처음 심은 전정우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여름 즈음의 일이다. 당시 부남미술관 부관장인 신명균(부남장학재단 상임이사)님의 소개로 처음 심은 선생님을 만났다. 20061125일 심은 전정우 선생님은 부남미술관의 초대전을 받아 전시를 했다. 당시 초대전을 기획한 신명균 부남미술관 부관장에 따르면, '다양한 천자문 서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신의 경지에 있는 분'이라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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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늦은 가을 우연한 계기로 강화도 심은미술관을 방문했다. 20131월은 심은 선생님의 천자문 120720종의 서체가 완결된 해이다. 천자문 120체 완성이라는 여정은 200410월부터 시작해서 매주 5일간 하루 15시간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고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83개월 만에 끝났다. 그 대장정의 막바지인 2012년 가을 심은미술관에서 그 서체의 일부를 직접 목도하는 호사를 누렸다. 직접 보고 놀란 것은 120체 중 서체마다 전혀 다른 경지에서 쓰인 글씨임에 크게 놀랐다. 마음 깊이 새겨진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춤을 추는 듯하다.

 

2017년 1월에는 서예 교육 자료를 청하기 위해 서실을 방문했다. 그날 뜻밖에도 심은 선생에 대한 세부 인터뷰 자료와 영상자료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철학을 전공한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후대의 연구를 위해서도 선생에 대한 자료는 다양한 각도에서 축적되어야 한다. 선생과 논의 끝에 선생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해 인터뷰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의 인터뷰 영상작업은 201729일부터 717일까지 13차례 정도 이루어졌다. 촬영된 영상물은 인터뷰 형식의 기록물과 글씨 쓰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녹화한 것이다. 1차 기록영상은 차후 재논의를 통해 보완할 예정에 있다.

 

심은 전정우에 대한 인터뷰는 여러 면에서 필자에게 폭넓은 시각을 제시했다. 또한 심은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심은 예술세계는 시기별로 보면, 강화도의 유년시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대학과 군대시절, 사회진출, 여초 선생님과의 만남과 서예입문(1978.07.12.~79.02), 삼성 재직기간, 19865월 삼성 퇴직과 서실 연구시기, 200410월부터 20131월 천자문 120(크기 종류에 따라 720종이라 부르기도 함)를 완성한 시기, 2013120체 완성 이후 시기로 구분된다. 심은 전정우의 예술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1단계 서예에 대한 관심(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서 사회진출까지), 2단계 서예입문시기(여초 선생님과의 만남과 삼성 재직기간), 3단계 서실연구시기(19865월 삼성 퇴직과 서실 연구시기), 4단계 천자문 120(천자문 120720종류 천자문 완성시기, 200410~ 201301), 5단계 20131월 이후 현재까지, 새로운 경지의 심은 예술세계(농필(弄筆)천자문, 심은체(混融體), 추상서(未來書), 문자추상(文字抽象) 등등)의 시기로 구분된다.

심은 전정우 예술세계의 진면목

1월 이후 심은 전정우는 자유로운 경지의 농필(弄筆)천자문, 그간의 모든 서체를 아우르며 내적으로 재해석해낸 심은 혼융체(일명 심은체), 미술과 서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자추상, 그 외에도 서예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여정에 있다. 그렇다면 심은 전정우의 예술세계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 예술세계의 진면목을 이루는 참된 그 바탕은 또한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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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다음 3가지 항목을 꼽고자 한다. 끈기(, 貞直, 誠實),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 자유로운 예술적 영혼(莊子 逍遙遊). 이 세 가지 항목은 심은 전정우 생애 전반을 인터뷰하고, 필자가 조심스럽게 내린 결론이다. 매우 평범하고 소박한 듯 보이는 이 말들 안에는 심은 전정우를 거대한 예술가로 성장하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며 근간이다. 끈기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 이 간결하고 단순한 말 안에 천재적 예술가 심은 전정우를 있게 한 숨겨진 힘과 원천이 있다. '끈기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에 숨겨진 심은 전정우의 진면목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끈기'라 함은 그 속성상 매우 단단하다. 단단함이란 어지간한 흔들림에서 굳건하게 버티는 힘이니, 음양(陰陽)으로 보자면 에 해당한다. 은 대개 움직임이 적다. 그러니 움직이지 아니하고 참고 견디며 버티는 힘이 대단히 강하다. 반대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에 해당하는 기운이다. 어린아이는 계절로 보면 봄에 해당한다. 봄은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봄에 나는 풀들은 쉽사리 시들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누군가 밟거나 꺾을지라도 이튼 날이면 어김없이 새순이 자랄 만큼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순수한 열정은 에너지로서 확산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확산에너지는 팽창하는 기운으로 그 기세를 쉽게 꺾을 수 없다.

심은 전정우는 '끈기()와 열정()'이라는 서로 다른 속성을 한 몸처럼 가지고 있다. 이 속성은 심은 전정우를 세계적인 천재 서예가를 탄생하게 했다. 우리는 다음의 일화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은 전정우는 19865월 삼성을 퇴직하고 지금까지 서실에서 평균 5시간이 매일매일 빠짐없이 썼다고 한다. 그간 사용한 붓은 300여 자루에 달한다. 19865월부터 20178월까지 글씨를 쓴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하면 14,965일 동안 글씨를 썼다. 414개월 동안 글씨를 쓰는 데에 매진했다. 물리적 시간으로 환산하면 오로지 74,825시간을 글씨 쓰는 데에 보냈다. 단순 시간으로는 각고의 노력의 시간을 체감할 수 없다. 그 시간을 체감할 수 있는 날짜들로 단순 환산하면 3,11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글씨를 쓴 셈이다.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틴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성공이면에는 '1만 시간의 법칙(The 10,000-Hours Rule)'이 있다고 한다. 심은 전정우는 다니엘의 1만 시간의 법칙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이다. 오히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서예 세계의 특성에 있다. 오래전 서예 역사 속에만 자리한 글씨를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어 되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느 특이 서체는 표본으로 삼을 만한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핵심을 찌르는 천재적 통찰력으로 역사 속의 서체와 결을 같이 하지 않고서야 도달할 수 없다. 그 세계는 '끈기와 순수한 열정'을 바탕으로 도달한 경지이다. 그 끝에서 심은의 '예술적 자유로운 영혼'은 경계를 넘어 서예사의 수많은 서체들과 결을 같이하며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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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천자문은 좁은 화면 안에 천자문 1000개의 글자가 빠짐없이 담겨 있으며, 글씨는 120체의 글씨에 따라 모두 그 격을 달리한다. 갑골문 천자문, 왕희지 천자문 익히 들어 알 수 있는 수많은 서체들이 그 격과 숨결을 달리하며 춤을 춘다. 마치 당대의 글씨 서체로 돌아가듯 혼연일체가 되어 보이는 이를 압도한다(莊子, 物化逍遙遊境地). 이때의 심은은 이미 사람의 경지가 아니다. 어찌 사람이 당대의 수많은 명 서체를 아우르며 천자문을 써내려갈 수 있단 말인가. 그 경탄의 이면에는 수많은 날들을 서예에 매진했던 숨 막히듯 타오르는 열정 같은 긴 여정(끈기와 어린아이 같은 열정)이 있다. 심은 전정우에게 천자문 120체는 法古創新이며 운명이고 숙명이며 천운이다. 미래의 서예 역사(심은체, 미래서, 문자추상)를 쓰는 그의 새로운 서예여정은 바로 이곳에서 발원한 까닭이다.

화이위조(化而爲鳥)와 심은 전정우의 새로운 예술세계(농필천자문, 심은 혼융체, 추상서(未來書), 문자추상)

천자문 120체를 완성한 심은 전정우는 이제 새로운 길을 나아가고 있다. 그간의 서체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체를 뿜어내고 있다. 농필(弄筆)천자문, 심은체(混融體), 추상서(抽象書, 未來書), 문자추상이 그 근간에 있다. 40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낸 전정우의 서예 여정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넘어 장자의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에 있다. 천자문 120체를 완성한 심은 전정우의 예술세계는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대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여정에 있다. 농필 천자문, 심은 혼융체, 추상서(미래서), 문자추상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필자가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문자추상과 추상서(미래서)이다. 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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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심은의 문자추상은 미술()과 서예()의 경계에 서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이응로와 남관 화백의 기존의 문자추상은 미술 중심의 접근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서 심은 문자추상은 서예에서 미술로 나아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심은 문자추상은 서예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반은 글씨이고 반은 그림이라는 점에서 반서반화(半書半畵)라 부르기도 한다. 서예와 그림이 그 뿌리가 같다는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은 당대 장언원(815~875)의 역대명화기(서화일치론(書畵一致論)와 원대 조맹부(1254~1322)의 화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보다 앞선 흥미로운 사례는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등장하는 히에로글리프(hieroglyph)로 도화(圖畵)문자(상형문자)이다. 본래 도화문자 같은 상형문자는 사물의 형체를 본떠 그 의미를 전하는 문자이다. 이러한 유형의 상형문자는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 마야문명이나 아스테카(Aztecas)의 문자, 지중해 고대 문자 등에서 볼 수 있다. 물체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는 그림과 글씨의 경계를 오간다는 점에서 현대적 문자추상과 일면 그 맥을 같이 한다.

 

서구사회의 문자추상으로 주목되는 것은 모노그램(monogram)이다. 모노그램은 얽혀 있는 문자 이미지로 구성되었다. 주로 인장과 상징, 상표로 대표되며, 중세 교회나 예술, 상업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모노그램이나 문양은 인쇄업자들이 종종 사용하거나 화가, 조각가, 도예가 들이 문양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심은 도자기 작품에 새겨 넣은 서체들은 문양이나 모노그램 같은 문자추상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미술과 서예의 경계를 오가는 현대 문자추상 화가는 한국의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응로(1904~1989)와 남관(1911~1990)을 들 수 있다. 고암 이응로는 동양의 사의(寫意)적인 서화개념을 서양의 추상적 조형성과 접목하고자 했다. 이응로는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말까지 서예적 추상 또는 문자추상으로 명성을 얻었다. 남관은 동굴벽화나 중국의 상형문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동양의 의식세계를 규명하고자 했다.고암 이응로와 남관의 문자추상은 미술영역 중심의 예술이다. 이를테면 서예와 글자의 속성을 미술영역으로 가져와 작품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반면 심은 전정우의 문자추상을 일으킨 것은 서예에서 비롯되었으며, 미술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방향성과 예술을 이루는 본질적 바탕이 이응로·남관과 다르다.

 

그렇다면 심은 전정우의 문자추상은 어떠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가.

심은 문자추상 작품은 서예의 필치에서 왔다. 그러므로 심은 문자추상은 서예가 가지는 맛과 힘이 있다. 서예의 근본을 바탕으로 한 미적 조형으로 확장된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자문 120체라는 천하제일의 법고창신의 경지에 이른 심은이 아닌가. 그런 그에게 글()과 그림()이라는 문자추상과 추상서는 새로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그를 그림과 글의 본질적 탐구로 이끌었는가. 불현듯 필자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 하는 감탄과 함께 떠오르는 말이 있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처음으로 돌아가 그 근본을 바로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 서예의 뿌리를 찾아 서화동원론을 탐구하였고, 문자추상, 상형문자, 도화문자를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닌가.

 

노자 16장에는 '만물은 무성하여 가득하지만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夫物芸芸 各復歸其根)'라는 구절이 있다. 심은에게 무성한 시절은 천자문 120체이며, 그 뿌리 근본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서예의 근본, 그림의 근본을 탐색하는 여정일 것이다. 그 여정에 문자추상과 추상서(미래서)가 있다. 문자추상과 추상서는 대상의 본질적 형상을 매우 간결하고 힘 있게 드러낸다. 마치 어린아이 같다. 대가의 풍모와 어린아이 같은 일면은 심은 전정우에게 자주 포착된다. 우연일까. 정말 우연일까. 노장 28장에는 '어린 아이로 되돌아간다(복귀어영아(復歸於嬰兒)). 통나무로 되돌아간다(복귀어박(復歸於樸))'이 있다. 이 구절이 교차한다.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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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는 동양 예술철학의 정수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노자는 장자에 앞서 보다 근원적 위치를 점한다. 우주 대자연의 순환사상을 담고 있는 노장사상은 강화도 한적한 곳에서 나고 자란 심은 전정우에게 운명처럼 필연처럼 다가왔다. 아니 심은이 비록 老莊을 모른다 해도 괜찮다. 이미 자연에 가깝고 자연과 벗 하면 사는 심은(沁隱)에게 대자연을 닮은 철학적 예술적 사유는 필연이다. 그의 문자추상과 추상서(미래서)는 자연을 닮고 사람을 닮았다. 매우 간결하며 힘이 있다.

 

'', '', '', ''은 심은 문자추상의 주요 소재이다. 그의 작품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현대인의 따뜻한 시선이 묻어난다. 근래 들어 면() 시리즈 작품은 사람 얼굴을 모티브로 하여 하늘을 보듯 향한 얼굴들로 가득하다. 사람이 사람 얼굴을 맞대고 이루는 조화가 따뜻하다. 화면 구성은 현대회화의 추상적 선과 면을 이룬다. 그 안에 강렬한 선의 힘은 서예적 강렬한 필치가 아니고는 담아낼 수 없다. 이는 여타의 기존의 화가적 문자추상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심은의 문자 추상은 글씨와 그림 그리고 현대적 감각의 예술로서도 손색이 없다.

 

최근 심은의 문자추상과 함께 주목되는 것이 추상서(抽象書), 즉 일명 미래서(未來書)이다. 이 추상서는 문자추상과 다르게 형상을 본 뜬 것이 아니다. 선의 본질적 힘과 변화가 강하게 드러나고, 강렬한 선을 통해 구획되는 화면의 긴장감이 시선을 압도한다. 가장 단순한 것으로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심은의 추상서(미래서)는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면모를 담고 있다. 이는 현대적 미감의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 심은(沁隱)은 현대적 예술의 변화에도 빠르게 응대하고 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과 하이퍼미디어를 중무장하며, 인공지능과 인터넷 세계를 활보하며 이미지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 정보는 기존의 한자가 지닌 정보 중심사회에서 벗어나 있다. 그보다는 순간 간파할 수 있는 함축적 의미 상징이미지에 현대인은 보다 열광한다. 지하철에서 현대인은 한편의 영화와 드라마 보다는 짧은 영상과 이미지에 관심을 가진다.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넘치는 이미지 홍수 속에 예술도 변모하고 있다.

강렬하고 신랄하며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예술이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와 함께 다가오고 있다. 수 천 년의 서예 역사를 담아낸 천자문 120체를 넘어선 예술 장인 심은 전정우는 가장 젊고 참신한 시선으로 미래 예술을 말한다. 그 한가운데 심은 추상서(미래서)와 문자추상이 있다.

 

근래의 심은 전정우의 행보를 보면 떠오르는 구절이 하나 있다.

장자 소요유편에 북쪽의 큰 물고기는 변해서 붕이라는 거대한 새가 된다(北冥有魚 其名爲鯤. 化而爲鳥 其名爲鵬.). 그리고 자유롭게 남쪽의 큰 바다로 날아간다. 곤이라는 물고기가 붕이라는 새로 변화하는 장자의 화이위조(化而爲鳥)처럼, 천자문 120체라는 인고의 시간을 넘어선 심은 전정우의 새로운 예술세계는 한국 넘어 새로운 시대의 세계문화예술로 향하는 변화와 도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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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沁隱 全 正 雨

심은 전 정 우

 

학 력 : 연세대학교 화공과 졸업

전 삼성 GROUP 회장비서실 근무

사 사 : 고 해오 금관호 선생 (한문)

고 여초 김응현 선생 (서예)

구당 여원구 선생 (전각)

심은미술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강화서로 915-1

전화 : 032-933-0964(FAX 겸용)

휴대전화 :010-3364-0946

심은서원 : 서울종로구 삼일대로3021 종로오피스텔 1202~3

휴대전화 : 010-3364-0946

E-mail : manisanin@hanmail.net

 

수상경력

全國揮毫大會 銅賞 受賞(中央日報·東洋放送, 國際書道聯盟)

全國篆刻公募展 金賞 受賞(韓國篆刻學會)

大韓民國 美術大展 書藝部門 特選(韓國文藝振興院)

大韓民國 美術大展 書藝部門 大賞 受賞(韓國文藝振興院, 韓國美術協會)

東亞美術祭 書藝部門 美術賞 受賞, 篆刻 特選(東亞日報社)

國際才藝大賽 國際特賞 受賞(臺灣CAA書法&藝術國際聯盟)

國際華文書法賽 特優奬 受賞(馬來西亞 新明日報)

國際書法大展 書藝 優秀賞, 篆刻 銀奬 受賞(中國書法家協會)

자랑스런 江華人賞 受賞(江華郡)

安平 創作賞 受賞(鐘路區, 서울安堅紀念事業會)

仁川文化賞 受賞(仁川廣域市)

 

주요전시 출품경력

ASINA GAME기념 國際書法展(韓國DESIGN包裝CENTER)

東亞美術祭 受賞作家 招待展(國立現代美術館)

國立現代美術館 招待作家展(國立現代美術館)

國際書法交流大展(新加坡博物院)

東方硏書會 三五週年 紀念展(藝術殿堂)

1回 書藝個人展(朝鮮日報 美術館)

SEOUL書藝大展(SEOUL市立美術館)

臨政廳舍復元紀念 韓中聯合書畵展(藝術殿堂)

中國 山東論語碑苑 造成展(孔子博物館)

SEOUL 定都 600年 紀念 書藝大展(SEOUL市立美術館)

韓國篆刻大展(雲峴宮美術館,圓光大 博物館)

國際書法交流展 東京大展(東京CENTRAL美術館)

國際篆刻展(北京 歷史博物館)

2回 書藝個人展(藝術殿堂 書藝館)

한글書藝의 오늘과 내일(藝術殿堂 書藝館)

世界書藝BIENNALE 招待展全州, 97', 99', 01', 03')

文字IMAGE(大田 翰林美術館)北京, 서울, 東京) 國際書畵展서울市立美術館)

上海當代中國書法名家國際要請展(上海 박물원)

千年韓國藝術江華展(沁隱美術館)

世紀韓國書藝文人畵家 招待展(成均館大學校)

京畿大學校 書院設立展(京畿大學校)

文字人間展(SEOUL市立美術館)

國際書法藝術聯合展(世宗文化會館)

3回 個人展(世宗文化會館·沁隱美術館)

까마의 눈 作家招待展(白岳美術館)

··日 代表作家三十人展(中國文化院)書藝 BIENNALE 招待展(SEOUL)

4回 個人展 沁隱千字文展(扶南美術館·沁隱美術館)

大韓民國代表作家展(藝術殿堂)

戊子同行展(白岳美術館·沁隱美術館)

回 個人展 66體千字文文字抽象(延大博物館·沁隱美術館·扶南美術館)

元老重鎭書藝家招待展(韓國書藝館)

大韓民國美術大展 招待作家展

世界書藝祝典(仁寺Art Plaza Gallery, 書藝世上)

茶山誕生 250周年 記念 書藝展(한길사, 茶山硏究所)

沁隱 120書體 720種 千字文 完成10~2013. 1)

中央日報, 藝術殿堂, 仁川廣域市 共同主催

沁隱 天字遊戱展(SEOUL書藝博物館)

仁川廣域市-中國天津市 姉妹結緣 20週年 紀念

沁隱 全正雨展共同開催

釜山書藝BIENNALE(釜山文化會館)

··日 漢字藝術大展(中國 深圳)

崔致遠 風流誕生 招待展(SEOUL書藝博物館)

13回 世界書藝招待祝展(書藝世上, 仁寺ART PLAZA)

韓國書藝逸品展(仁寺洞 H GALLERY)

大韓民國美術大展 受賞作家 特別招待展(韓國書藝博物館)

世界書藝全北BIENNALE 招待展(全州)

月刊 墨家 創刊 10週年 紀念 誌上 招待展

歷代 大韓民國美術大展 受賞作家展(韓國美術協會)

國際書法名家展(如初書藝紀念館)

藝術殿堂 書藝博物館 再開館紀念 招待展(SEOUL書藝博物館)

國際蘭亭筆會 招待 慶州展(慶州藝術殿堂)

韓國書藝逸品展(白岳美術館)

藝術殿堂 齊白石展 招待出品(SEOUL書藝博物館)

仁川廣域市 主催 沁隱 全正雨 遊戱自如展(仁川文化藝術會館)

 

주요대회 심사

大韓民國美術大展 審査委員 運營委員長 歷任

東亞美術祭 審査委員 歷任

全國揮毫大會(KBS, 國際書法藝術聯合) 審査委員 歷任

剛菴書藝大展 審査委員長 歷任

1回 如初先生追慕展 揮毫大會 審査委員 歷任

世界書藝全北BIENNALE 審査委員長 歷任

 

현 재

江華沁隱美術館長

 

작품집

沁隱般若心經印存 發刊(民族社)

沁隱全正雨 書藝展 作品集 第一輯 發刊(月刊書藝文人畵)

沁隱全正書集 第二輯 發刊(梨花文化出版社)

沁隱全正雨書集 第三輯 發刊(月刊書藝文人畵)

沁隱千字文展 作品集 第四輯 發刊(月刊書藝文人畵)

沁隱 66體千字文·文字抽象 作品集 第五輯 發刊(月刊書藝文人畵)

沁隱全正雨: 天字遊戱展 作品集

沁隱全正雨: 遊戱自如展 作品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