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글씨 21

칼럼

2018-03-06
모바일 매거진 글씨21 기획 :

<모바일 매거진 글씨21 초대 청년 정예작가 3인展>의 의의


조민환(성균관대 교수,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1.

'모바일 매거진 글씨21'이 기획하여 20182월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모바일 매거진 글씨21'을 빛낸 중진·원로작가 10>, <'모바일 매거진 글씨21' 초대 청년 정예작가 3>을 개최한 것은 한국서단 역사에 기록될 하나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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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회 作 -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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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作 - 청죽


후원전과 초대전이 동시에 개막된 그 내막을 보면, 기증된 작품의 판매금은 한국서단 미래의 주역인 청년작가의 후원금으로 사용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대한민국 서·화단의 중진·원로작가 10[구지회, 김영삼, 박용설, 박원규, 백영일, 이일구, 정하건, 정해천, 조성자, 황석봉]의 작품 전시와 '모바일 매거진 글씨21'에서 진행되었던 청년정예작가 선발 공모를 통해 선발된 청년 3[이완, 이정, 정준식]의 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한국 서단의 선후배가 공존을 모색한 아름다운 전시회이면서 공모전 선발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기획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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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설 作 - 茶山先生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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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규 作 - 萬福


2.

최근 한국서단에 종이로 발간되는 서예잡지가 아닌 영상물을 통해 서예에 종사하는 인물들에게 다양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주고 있는 모바일 매거진 매체가 탄생하였다. '모바일 매거진 글씨21'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모바일 매거진 글씨21'은 서예·캘리그라피·문인화·전각과 관련된 뉴스와 전시를 다루는 모바일 매거진으로, 한국의 서예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활성화하고자 2017년 출범한 회사이다. 이 회사는 모바일 앱에서 '모바일 매거진 글씨21'을 검색하면 전시일정, 작가 인터뷰, 서단 소식 등을 무료로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게 하여 종이로 나오는 월간지 형태의 잡지와는 차별성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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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일 作 - 墨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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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구 作 - 댓잎에 바람 일어2


'모바일 매거진 글씨21' 대표인 석태진은 그동안 한국서단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들을 선정해 인터뷰 형식으로 작가들의 서예세계와 서예역정을 생생하게 보여준 바가 있다. 그 인터뷰의 주제는 이 작가의 생활’, ‘원로에게 길을 묻다라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각 작가들의 예술창작과 관련된 실질적인 운필 과정 및 예술정신을 하나하나 낱낱이 보여주어 한국서단의 현재적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만약 '모바일 매거진 글씨21'이 정보를 제공하는 언어 문제만 해결한다면 한국서예의 현황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전문 매체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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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건 作 - 口無多言 身不輕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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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천 作 - 淸明


3.

인류의 예술사를 보면 동일한 예술작품이라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달리 평가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양예술사에 적용하면, 유가(儒家)의 중화(中和) 미학의 틀에서 평가하느냐 아니면 노장(老莊)이나 양명심학(陽明心學)에 근간한 광견(狂狷)미학의 틀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작품이라도 그 평가는 달랐다. 이에 서예의 경우 조맹부(趙孟頫) 같이 법고(法古)에 의한 보기 좋은 연미(姸媚)한 글씨와 왕탁(王鐸)이나 부산(傅山)처럼 졸박(拙樸)하고 거칠지만 작가의 창의성이 담긴 글씨는 구별해서 볼 것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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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자 作 - 학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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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봉 作 - 如人飮水 冷暖自如


이상의 역사를 가졌던 서예가 오늘날은 이전과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제 우리들의 실생활 곳곳에서 인공지능이 침투하고 있는데, 예술분야도 마찬가지라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특히 서예의 경우 한정된 문자를 통해 그 예술성을 담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여타 예술장르에 비해 생존과 관련해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좁혀서 말한다면, 앞으로 인간이 로봇을 이용한 서예 창작이 가능하게 된다면, 상황에 따라 붓의 적절한 운용을 습득하기 위해 오랜 기간의 서예학습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인간의 힘을 빌리더라도 만약 왕희지(王羲之)’의 모든 서체를 습득한 인공지능 로봇서예가가 인간과 왕희지 서체 모방을 두고 대결한다면 인간이 백전백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파고를 통해 바둑에서 그 현실을 확인한 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예가 예술로서 존립하려면 서예가는 인공지능 로봇서예가가 할 수 없는 것을 창안해야 한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인공지능 로봇서예가는 인간이 준 데이터를 분석하는 차원에서는 이른바 법고에 의한 의양(依樣)의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겠지만, 전혀 새로운 것을 창안하는 창신(創新)의 경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특히 창신의 경지에서 논할 수 있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 감정의 감흥과 감수성은 여전히 인공지능 로봇서예가가 넘볼 수 없는 인간의 몫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회화적 요소를 서예에 응용한[以畵入書]’ 서예세계를 펼친 정섭(鄭燮)이 말한 창신적 예술정신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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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作 - 磨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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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作 - 口口口


하늘을 번쩍 들고 땅을 짊어질 만한 글,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리는 듯한 글씨, 신령도 꾸짖고 귀신도 욕할 만한 이야기,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볼 수 없는 그림은 원래 심상한 식견 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기 이전에는 하나의 격을 세우지 않으며, 이미 그린 이후에도 하나의 격을 남기지 않는다.

 

미래의 서예는 정섭이 말한 것과 같은 예술정신을 통한 작품 창작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그럼 '모바일 매거진 글씨21' <초대 청년 정예작가 3>이 갖는 의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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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作 - 四(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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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作 - 一(one) 

4.

 

<청년 정예작가 3인전>'모바일 매거진 글씨21'에서 45세 이하의 젊은 서예가를 대상으로 정예작가의 발굴과 지원이라는 의미와 함께, 한국서예의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예견하고자 하는 기획의 결과물이다. 선발작가에게는 전시 개최의 특전을 부여하기로 했고,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함께 열리는 중진·원로작가의 전시를 통한 수익금으로 충당하고자 하였다. 이번 '모바일 매거진 글씨21' 기획전에 참여했던 중진·원로작가 10인들은 개개인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한국서단과 서예의 미래를 걱정하고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기에 이 같은 아름다운 전시회가 열릴 수 있었다.

 

'모바일 매거진 글씨21' 편집주간인 성인근은 이번 공모전에서는 조형보다는 질감에, 질감보다는 개성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과 작가를 선별했다고 한다. 작가 선별 기준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고전에 대한 이해와 자기화, 현대 예술 사조에 대한 감각, 서예와 타 장르와의 조응성을 고려해 선발했다고 한다. 선정된 작가에 대한 선정 평을 보면, 이완 작가는 고전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현대적 조형성과 함축성이 돋보인 점, 이정 작가는 전통에 대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사조 속에서 붓과 먹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것, 정준식 작가는 문인화의 본령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함께 시대미감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들로 채운 점들이 주목받았다. 전반적으로 작가마다 실험적 예술정신과 서예의 미래적 전망에 대한 예술창작 정신 등이 높이 평가받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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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식 作 - 深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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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식 作 - 論畵 4


작가 선정과 관련해 평가한 항목들을 보면 어느 항목도 그 조건을 채우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다양한 항목과 기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정 기준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지적한다면, 바로 작가의 실험적이면서 도발적인 창신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작가 선정과 관련된 기준은 여타 수없이 행해지고 있는 공모전 선발과 다른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의의가 깊다. 무슨 말인고 하니, 대부분의 공모전들이 작가 선발 기준을 주로 법고 측면에 초점을 맞추거나, 혹은 출품된 작품의 예술성이나 창신성이 뛰어나도 점하나 획하나 잘못된 것 가지고 시비를 거는 유아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모바일 매거진 글씨21'에서 기획한 공모전은 그런 점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차별성은 한국서단의 미래를 밝게 해 줄 것이란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아울러 그 차별성에 작가 선정의 공정성도 동시에 묻어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국서단에도 이제 곳곳에서 바야흐로 훈풍이 불고 있다. 그 훈풍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한국서단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