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기강좌 <한글> 제4강
-조선이 성리학을 새로운 정치 이념을 도입하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는 등의 새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인류의 역사를 우리의 문자로 기록한다’는 주체적인 문화 활동을 주도하였다. 한글 초기의 기호적인 형태는 필사의 미감을 느낄 수 없지만, 전획의 상징성에는 천지자연의 의미가 담겨있으며, 점차 다양한 구성과 필사의 변모를 이끌어내 예술의 면모를 갖추어왔다. 18세기 후반 무렵부터 성숙과 발전을 크게 이루며 궁체 특징을 보다 안정되게 구사한 왕후들의 언간과 궁녀들이 필사한 문서, 소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세기 궁체에서도 정자, 흘림, 진흘림 등의 스타일을 보이며 일변해왔다. 한글서예는 한글과 함께 우리 고유의 언어이자 문화이다. 글씨21의 실기강좌 한글편에서는 한얼 이종선 강사의 한글 강의를 통해 우리의 한글의 기초상식과 함께 한글 서예의 기초 획 긋기부터 중·고급자 과정까지의 강좌를 들어볼 수 있다. 2019. 3. 18글씨21 편집실
실기강좌 <한글> 제5강
- 조선이 성리학을 새로운 정치 이념을 도입하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는 등의 새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인류의 역사를 우리의 문자로 기록한다’는 주체적인 문화 활동을 주도하였다. 한글 초기의 기호적인 형태는 필사의 미감을 느낄 수 없지만, 전획의 상징성에는 천지자연의 의미가 담겨있으며, 점차 다양한 구성과 필사의 변모를 이끌어내 예술의 면모를 갖추어왔다. 18세기 후반 무렵부터 성숙과 발전을 크게 이루며 궁체 특징을 보다 안정되게 구사한 왕후들의 언간과 궁녀들이 필사한 문서, 소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세기 궁체에서도 정자, 흘림, 진흘림 등의 스타일을 보이며 일변해왔다. 한글서예는 한글과 함께 우리 고유의 언어이자 문화이다. 글씨21의 실기강좌 한글편에서는 한얼 이종선 강사의 한글 강의를 통해 우리의 한글의 기초상식과 함께 한글 서예의 기초 획 긋기부터 중·고급자 과정까지의 강좌를 들어볼 수 있다. 2019. 4. 15글씨21 편집실
실기강좌 <한글> 제6강
조선이 성리학을 새로운 정치 이념을 도입하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는 등의 새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그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인류의 역사를 우리의 문자로 기록한다’는 주체적인 문화 활동을 주도하였다.한글 초기의 기호적인 형태는 필사의 미감을 느낄 수 없지만, 전획의 상징성에는 천지자연의 의미가 담겨있으며, 점차 다양한 구성과 필사의 변모를 이끌어내 예술의 면모를 갖추어왔다. 18세기 후반 무렵부터 성숙과 발전을 크게 이루며 궁체 특징을 보다 안정되게 구사한 왕후들의 언간과 궁녀들이 필사한 문서, 소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세기 궁체에서도 정자, 흘림, 진흘림 등의 스타일을 보이며 일변해왔다. 한글서예는 한글과 함께 우리 고유의 언어이자 문화이다. 글씨21의 실기강좌 한글편에서는 한얼 이종선 강사의 한글 강의를 통해 우리의 한글의 기초상식과 함께 한글 서예의 기초 획 긋기부터 중·고급자 과정까지의 강좌를 들어볼 수 있다. 2019. 6. 26글씨21 편집실
실기강좌 <해서> 제1강
서예는 붓을 포함한 유사한 도구를 사용하여 쇠ㆍ돌ㆍ나무ㆍ비단ㆍ종이ㆍ뼈 등 다양한 바탕에 자기의 생각을 글씨 또는 그림의 형태로 풀어내는 예술이다. 서체의 변화로 보면, 전서篆書ㆍ예서隸書ㆍ초서草書 ㆍ해서楷書ㆍ 행서行書 등으로 변하여 왔다. 서체는 갑골문 이후 정체正體와 초체草體의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이번 글씨21실기강좌에서는 해서에 대해서 다뤄본다. - 해서楷書란? 해서楷書는 예서隸書로부터 획을 간단하게 줄이고 가로 획은 평평하게 하고 세로획은 수직으로 점점 변화되어 왔다. 특징은 점획이나 형태가 간결하고 명확한 간가間架ㆍ결구結構가 정돈된 서체이다. 따라서 가장 쓰기 쉽고, 읽기 쉬우며 실용적인 글씨로 중요한 서체가 되었다. 그 결과도 엄정嚴正하고 정제整齊되어 침착沈着 부동미不動美가 강하게 나타난다. 해서의 명칭은 당나라 시기까지는 진서眞書 ㆍ정서正書ㆍ 예서隸書 ㆍ금예今隸 ㆍ장정서章程書 등 여러 명칭이 있었으며, 송나라 시대 이후 해서로 불렀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와 수당隋唐시기에는 해서를 한예漢隷와 구분하지 않고 예서隸書라는 이름으로 해서楷書와 행서行書 모두를 지칭하기도 하였으며 또 한예漢隷를 팔분八分, 행서行書를 예서隸書로 부르는 등 해서의 명칭과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다. 삼국시기까지 해서를 발전시킨 조위曹魏시기의 종요鍾繇를 들 수 있다. 그의 해서는 <천계직표薦季直表>ㆍ<하첩표賀捷表>ㆍ<선시표宣示表>등을 들 수 있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는 종요鍾繇 서예를 이어받아 남조南朝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북조北朝에서도 안정된 정치체제가 구축된 후 한화漢化 정책으로 남쪽의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南朝에서 사용되고 있는 해서를 공식 서체로 사용하였다. 남조南朝에서는 비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전통 때문에 비각에 새긴 해서는 그 수가 적으나 북조北朝에서는 해서를 사용하여 묘지墓誌․ 조상기造像記ㆍ마애磨崖ㆍ석비石碑 등의 수많은 서예 작품을 남기고 있다. 북조의 해서는 질박하고 웅장하며 강건한 미감을 특성으로 하고 남조南朝시기는 단아하고 수려한 미감과 함께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당나라시기에는 해서가 진晋나라시기 해서나 북위北魏나라시기 해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서예가 작품의 개성보다는 법칙을 중시하고 규범화되어 있는 것이다.그 후 당唐나라 초당初唐 4대가인 구양순歐陽詢, 우세남虞世南, 저수량褚遂良, 설직薛稷 등과 성당盛唐시기 안진경顔眞卿, 유공권柳公權 등의 활약으로 해서가 완성되어 서예 풍이 다채롭고 성대하게 되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 해서의 이론과 실기기초부터 장맹룡비, 사마현자묘지명, 원정묘지명, 석문명을 함께 임서하며 더 나아가 해서작품 창작활동까지 배워볼 수 있다.2019.7.22글씨21편집실
실기강좌 <해서> 제2강(장맹룡비)
서예는 붓을 포함한 유사한 도구를 사용하여 쇠ㆍ돌ㆍ나무ㆍ비단ㆍ종이ㆍ뼈 등 다양한 바탕에 자기의 생각을 글씨 또는 그림의 형태로 풀어내는 예술이다.서체의 변화로 보면, 전서篆書ㆍ예서隸書ㆍ초서草書 ㆍ해서楷書ㆍ 행서行書 등으로 변하여 왔다. 서체는 갑골문 이후 정체正體와 초체草體의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이번 글씨21실기강좌에서는 해서에 대해서 다뤄본다. - 해서楷書란? 해서楷書는 예서隸書로부터 획을 간단하게 줄이고 가로 획은 평평하게 하고 세로획은 수직으로 점점 변화되어 왔다. 특징은 점획이나 형태가 간결하고 명확한 간가間架ㆍ결구結構가 정돈된 서체이다. 따라서 가장 쓰기 쉽고, 읽기 쉬우며 실용적인 글씨로 중요한 서체가 되었다. 그 결과도 엄정嚴正하고 정제整齊되어 침착沈着 부동미不動美가 강하게 나타난다. 해서의 명칭은 당나라 시기까지는 진서眞書 ㆍ정서正書ㆍ 예서隸書 ㆍ금예今隸 ㆍ장정서章程書 등 여러 명칭이 있었으며, 송나라 시대 이후 해서로 불렀다.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와 수당隋唐시기에는 해서를 한예漢隷와 구분하지 않고 예서隸書라는 이름으로 해서楷書와 행서行書 모두를 지칭하기도 하였으며 또 한예漢隷를 팔분八分, 행서行書를 예서隸書로 부르는 등 해서의 명칭과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다.삼국시기까지 해서를 발전시킨 조위曹魏시기의 종요鍾繇를 들 수 있다. 그의 해서는 <천계직표薦季直表>ㆍ<하첩표賀捷表>ㆍ<선시표宣示表>등을 들 수 있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는 종요鍾繇 서예를 이어받아 남조南朝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북조北朝에서도 안정된 정치체제가 구축된 후 한화漢化 정책으로 남쪽의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南朝에서 사용되고 있는 해서를 공식 서체로 사용하였다.남조南朝에서는 비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전통 때문에 비각에 새긴 해서는 그 수가 적으나 북조北朝에서는 해서를 사용하여 묘지墓誌․ 조상기造像記ㆍ마애磨崖ㆍ석비石碑 등의 수많은 서예 작품을 남기고 있다. 북조의 해서는 질박하고 웅장하며 강건한 미감을 특성으로 하고 남조南朝시기는 단아하고 수려한 미감과 함께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당나라시기에는 해서가 진晋나라시기 해서나 북위北魏나라시기 해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서예가 작품의 개성보다는 법칙을 중시하고 규범화되어 있는 것이다.그 후 당唐나라 초당初唐 4대가인 구양순歐陽詢, 우세남虞世南, 저수량褚遂良, 설직薛稷 등과 성당盛唐시기 안진경顔眞卿, 유공권柳公權 등의 활약으로 해서가 완성되어 서예 풍이 다채롭고 성대하게 되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 해서의 이론과 실기기초부터 장맹룡비, 사마현자묘지명, 원정묘지명, 석문명을 함께 임서하며 더 나아가 해서작품 창작활동까지 배워볼 수 있다.2019. 9. 4글씨21편집실
실기강좌 <해서> 제3강(사마현자묘지명)
서예는 붓을 포함한 유사한 도구를 사용하여 쇠ㆍ돌ㆍ나무ㆍ비단ㆍ종이ㆍ뼈 등 다양한 바탕에 자기의 생각을 글씨 또는 그림의 형태로 풀어내는 예술이다.서체의 변화로 보면, 전서篆書ㆍ예서隸書ㆍ초서草書 ㆍ해서楷書ㆍ 행서行書 등으로 변하여 왔다. 서체는 갑골문 이후 정체正體와 초체草體의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이번 글씨21실기강좌에서는 해서에 대해서 다뤄본다. - 해서楷書란? 해서楷書는 예서隸書로부터 획을 간단하게 줄이고 가로 획은 평평하게 하고 세로획은 수직으로 점점 변화되어 왔다. 특징은 점획이나 형태가 간결하고 명확한 간가間架ㆍ결구結構가 정돈된 서체이다. 따라서 가장 쓰기 쉽고, 읽기 쉬우며 실용적인 글씨로 중요한 서체가 되었다. 그 결과도 엄정嚴正하고 정제整齊되어 침착沈着 부동미不動美가 강하게 나타난다. 해서의 명칭은 당나라 시기까지는 진서眞書 ㆍ정서正書ㆍ 예서隸書 ㆍ금예今隸 ㆍ장정서章程書 등 여러 명칭이 있었으며, 송나라 시대 이후 해서로 불렀다.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와 수당隋唐시기에는 해서를 한예漢隷와 구분하지 않고 예서隸書라는 이름으로 해서楷書와 행서行書 모두를 지칭하기도 하였으며 또 한예漢隷를 팔분八分, 행서行書를 예서隸書로 부르는 등 해서의 명칭과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다.삼국시기까지 해서를 발전시킨 조위曹魏시기의 종요鍾繇를 들 수 있다. 그의 해서는 <천계직표薦季直表>ㆍ<하첩표賀捷表>ㆍ<선시표宣示表>등을 들 수 있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는 종요鍾繇 서예를 이어받아 남조南朝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북조北朝에서도 안정된 정치체제가 구축된 후 한화漢化 정책으로 남쪽의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南朝에서 사용되고 있는 해서를 공식 서체로 사용하였다.남조南朝에서는 비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전통 때문에 비각에 새긴 해서는 그 수가 적으나 북조北朝에서는 해서를 사용하여 묘지墓誌․ 조상기造像記ㆍ마애磨崖ㆍ석비石碑 등의 수많은 서예 작품을 남기고 있다. 북조의 해서는 질박하고 웅장하며 강건한 미감을 특성으로 하고 남조南朝시기는 단아하고 수려한 미감과 함께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당나라시기에는 해서가 진晋나라시기 해서나 북위北魏나라시기 해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서예가 작품의 개성보다는 법칙을 중시하고 규범화되어 있는 것이다.그 후 당唐나라 초당初唐 4대가인 구양순歐陽詢, 우세남虞世南, 저수량褚遂良, 설직薛稷 등과 성당盛唐시기 안진경顔眞卿, 유공권柳公權 등의 활약으로 해서가 완성되어 서예 풍이 다채롭고 성대하게 되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 해서의 이론과 실기기초부터 장맹룡비, 사마현자묘지명, 원정묘지명, 석문명을 함께 임서하며 더 나아가 해서작품 창작활동까지 배워볼 수 있다.2019. 11. 15글씨21편집실
실기강좌 <해서> 제4강(원정묘지명)
서예는 붓을 포함한 유사한 도구를 사용하여 쇠ㆍ돌ㆍ나무ㆍ비단ㆍ종이ㆍ뼈 등 다양한 바탕에 자기의 생각을 글씨 또는 그림의 형태로 풀어내는 예술이다.서체의 변화로 보면, 전서篆書ㆍ예서隸書ㆍ초서草書 ㆍ해서楷書ㆍ 행서行書 등으로 변하여 왔다. 서체는 갑골문 이후 정체正體와 초체草體의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이번 글씨21실기강좌에서는 해서에 대해서 다뤄본다. - 해서楷書란? 해서楷書는 예서隸書로부터 획을 간단하게 줄이고 가로 획은 평평하게 하고 세로획은 수직으로 점점 변화되어 왔다. 특징은 점획이나 형태가 간결하고 명확한 간가間架ㆍ결구結構가 정돈된 서체이다. 따라서 가장 쓰기 쉽고, 읽기 쉬우며 실용적인 글씨로 중요한 서체가 되었다. 그 결과도 엄정嚴正하고 정제整齊되어 침착沈着 부동미不動美가 강하게 나타난다. 해서의 명칭은 당나라 시기까지는 진서眞書 ㆍ정서正書ㆍ 예서隸書 ㆍ금예今隸 ㆍ장정서章程書 등 여러 명칭이 있었으며, 송나라 시대 이후 해서로 불렀다.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와 수당隋唐시기에는 해서를 한예漢隷와 구분하지 않고 예서隸書라는 이름으로 해서楷書와 행서行書 모두를 지칭하기도 하였으며 또 한예漢隷를 팔분八分, 행서行書를 예서隸書로 부르는 등 해서의 명칭과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다.삼국시기까지 해서를 발전시킨 조위曹魏시기의 종요鍾繇를 들 수 있다. 그의 해서는 <천계직표薦季直表>ㆍ<하첩표賀捷表>ㆍ<선시표宣示表>등을 들 수 있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는 종요鍾繇 서예를 이어받아 남조南朝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북조北朝에서도 안정된 정치체제가 구축된 후 한화漢化 정책으로 남쪽의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南朝에서 사용되고 있는 해서를 공식 서체로 사용하였다.남조南朝에서는 비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전통 때문에 비각에 새긴 해서는 그 수가 적으나 북조北朝에서는 해서를 사용하여 묘지墓誌․ 조상기造像記ㆍ마애磨崖ㆍ석비石碑 등의 수많은 서예 작품을 남기고 있다. 북조의 해서는 질박하고 웅장하며 강건한 미감을 특성으로 하고 남조南朝시기는 단아하고 수려한 미감과 함께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당나라시기에는 해서가 진晋나라시기 해서나 북위北魏나라시기 해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서예가 작품의 개성보다는 법칙을 중시하고 규범화되어 있는 것이다.그 후 당唐나라 초당初唐 4대가인 구양순歐陽詢, 우세남虞世南, 저수량褚遂良, 설직薛稷 등과 성당盛唐시기 안진경顔眞卿, 유공권柳公權 등의 활약으로 해서가 완성되어 서예 풍이 다채롭고 성대하게 되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 해서의 이론과 실기기초부터 장맹룡비, 사마현자묘지명, 원정묘지명, 석문명을 함께 임서하며 더 나아가 해서작품 창작활동까지 배워볼 수 있다.2019. 12. 5글씨21편집실
실기강좌 <해서> 제5강(석문명)
실기강좌 <해서> 제6강(창작)
이론 특강 <여초의 삶과 서법> 소사 채순홍
2021년 6월 11일(금)부터 6월 20일(일)까지 일백헌(북촌로11가길 1)에서 2021여초서예관 신수유물 공개 특별전 ≪오직 書法, 如初≫가 개최되었다. 글씨21에서는 ≪오직 書法, 如初≫ 전시 연계 특강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기획하였다. 6월 11일(금) 1부 특강에는 소사 채순홍(동방서법탐원회 총회장)의 ‘如初의 삶과 書法’ 강연이 펼쳐졌다. 여초 선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되짚어보며 ‘오직 서법이 곧 여초’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6월 17일(목)에는 근원 김양동(계명대학교 석좌교수)의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한국미의 원형에 대한 성찰’ 강연이 이어졌다. 서예를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국미의 원형질에 관한 인문학 강의로,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김양동 著, 지식산업사, 2015)』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본 전시는 여초서예관(조준형 학예사)와 글씨21(석태진 대표)가 공동으로 주최·기획하였으며, 아트센터 일백헌에서 협찬하였다. 2021. 7. 26글씨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