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Critique]

2021-07-06
신 문자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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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문자도展> 전시장 전경




문자와 이미지의 만남

 

더아트21 큐레이터 최다은

 

최근 패션, 캐릭터, 게임, 테크 등 여러 분야에서 서로의 강점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과 작품을 생산해내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주로 오래된 브랜드들이 젊은 Z세대에게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기획되는 경우가 많은데, 취향만 존중된다면 오래된 브랜드도 큰 인기를 얻는다. 무분별한 컬래버레이션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브랜드의 협업은 색다른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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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인 & 박연옥 · 큰 솔 호표 문자도 ·  94×60cm


이번 신 문자도역시 서예와 민화라는 각 분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하고 전통예술의 이미지를 재고해보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작가마다 제 역량을 발휘하면서 서로의 작업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시도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서는 융합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역사는 재능있는 예술가를 전적으로 지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은 감정을 감화하는 힘이 있어서 유명작가의 예술작품을 활용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었고, 이후 예술 전반으로 확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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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김연우 · 나랏말싸미 · 110×100cm


문자도는 문자의 의미를 중시하는 개념예술로서의 문자와 자유분방한 생활 미감이 반영된 민중예술로서의 그림이 조화를 이루는 예술과 예술의 컬래버레이션이다. 18, 19세기 문자도에는 크게 길상(吉祥)과 부귀(富貴), 효제(孝弟)를 뜻하는 문자가 쓰였기 때문에 문자의 의미를 나타내는 용과 호랑이, 수복강녕(壽福康寧), 유학 사상이 담긴 고사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문자 안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늬로 장식했고, 그림이 문자의 부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교훈적인 내용보다는 저잣거리의 삶을 담아내며 장식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예술적으로 문자도의 독자적인 양식을 세우는 배경이 되었다. 20세기에도 문자도의 생산은 있었지만, 정형화된 도안을 제작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민화는 오늘날 가죽 끝에 무지개색을 묻혀 이름을 쓰는 혁필화로 마주하고 있다. 문자도 이면의 공통된 가치는 행복을 염원하는 정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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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유 김지숙 · 화려한 외출 · 90×60cm


신 문자도는 서예 작가와 민화 작가의 개성적인 글씨, 색채, 디자인이 어우러져 오늘날의 언어와 미감을 반영한 2021년 문자도이다. 문인 사대부의 예술로 보급된 서예의 태생적 이미지를 전환하고, 장식화로 머무는 민화의 문자의미 부재를 상호보완한다. <솔 호표 문자도>는 전통적인 호랑이 민화를, <> 작품은 기물에 일부 문자를 새겨 넣은 <백수백복도>를 모티브로 삼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조선이라는 시대적 특성에 따라 주체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문자도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조선 중기 이후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이 쓰던 기물을 표현한 책가도가 있다. <여인의 꿈>은 민화가 진정한 민중예술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게 한다. <以患爲利>는 자유분방한 표현 형식으로 현 코로나 시국을 극복하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외에도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문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형상화하는 다채로운 형식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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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 박선영 · 숲 · 90×60cm


컬래버레이션은 이제 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익숙한 현상이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구분도 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비주류로 취급받는 B급 예술이 다수가 선호하면 주류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분야가 상생의 과정을 거쳐 신선한 콘텐츠를 창조할 때 사람들은 관심을 둔다. 오늘날의 언어와 상징물로 현대판 문자도를 완성한다면 문자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물론 사회적 효용성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신 문자도이 가져올 긍정적인 기대 속에 서예와 민화 두 분야의 행보가 주목된다.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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