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 작가의 思생활, 박용설
서예가와 교육자의 길을 함께 걸어온명품 서예가 초민 박용설\"가장 중요한 것은 그 근본을 이해하는 것.\"모나거나 튀지 않고 묵묵히 성실한 삶을 살라며 이응백 교수(서울대 명예교수1923~2010)께서 초민(艸民)’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고 한다. 실제로 초민 박용설은 서예인생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어둠속에서 영롱한 빛을 내는 반딧불처럼 빛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실제로 발열 없이 빛나는 반딧불이 아닌, 태양과도 같은 빛이었다. 그 빛을 조명하여 초민 박용설의 서예인생과 교육철학에 대해 집중 인터뷰를 하고자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오는 11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앞두고 총망(悤忙)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어 할애해 주었다.그는 ‘초민’이라는 호 말고도 ‘고윤실’이라는 당호가 하나 더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님의 글을 보고 ‘옛것을 잘 이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보자’라는 뜻으로 지은 ‘고윤실’은 문자의 근본을 중시 여기는 초민 박용설의 뜻이 가득 담겨있다. 오늘날의 기형적인 획을 구사하는 서예나, 캘리그라피 작가들이 근본을 간과하고 만들어내는 문자의 오류들을 상기하며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인터뷰 전문 보기(클릭)<<
[Visit]
고즈넉함 속에 활기, 지강서예학원
일산에 위치한 한 서실을 방문했다. 어딘가 구수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지강 김승민 작가가 운영하는 서실이다. 서실은 여름방학을 맞이해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로 붐볐다. 그 사이에는 어른도 자리하고 계셨다. 열심히 한글서예를 쓰고 계시는 한 어른께 서예 선생님이신 지강 김승민에 대해 여쭈었더니 허허 웃으시며 모든 서체를 두루 잘하시는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실제로 지강 김승민 작가는 2011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는 영광을 누린 작가로 앞날을 촉망받는 작가 중 한명이다. 한편에는 나란히 초등학생 형제가 글씨를 쓰고 있었다. 형제에게 “지강 선생님과 사진 한 장 찍어줄까?” 했더니, 부끄러운 듯 웃으며 도망을 갔고 김승민 작가는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이 작업실에는 김승민 작가의 아내이자 파트너인 이기연 선생님이 함께 계신다. 무뚝뚝한 김승민 작가의 성격을 보완하여 아이들에게 한없이 다정한 이기연 선생님은 작업실을 한층 밝히고 계셨다.지강 김승민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열심히 글씨를 쓰고 있는 젊은 서예작가입니다. 여느 작가들처럼 술 마시는 것,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죠, 어떤 일이든 한 번 시작하면 그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여 끝을 보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성격을 고쳐보고자 시작 하게 된 서예가 지금에 업이 되어있고,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林椿先生詩 작업실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제 작업실은 경기도 일산 후곡마을 학원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담한 사이즈에 고즈넉한 공간, 아끼는 화초들도 많이 있구요... 언제든지 편하게 오셔서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 작업실 주변에 초등학교가 많이 배치되어 있는데, 서실 운영에 위치적 효과가 있는지? 효과가 없지는 않습니다. 질문주신 것처럼 아무래도 주변에 학교가 많다보니, 서예에 관심을 보이는 부모님들의 상담문의가 끊이지 않고 오는 편입니다.하지만 위치적 장점이 있다고 해도 내실이 허술하게 되면 부모님들은 금방 느낍니다. 학원가에 위치한 만큼 소문이 빠르게 퍼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교육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菜根譚句-誠心和氣 이 작업실만의 공부 스타일/ 수업방식이 있다면?- 서예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인성’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 서실에서는 들어오고 나갈 때 꼭 인사를 하게끔 합니다. 간혹 아이들이 인사를 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성 문제에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교육을 합니다. 서예를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성교육, 그 안에서 서예교육이 비로소 꽃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시하는 부분은 ‘서체의 다양성’을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호기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서예라는 것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연구하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다양한 서체를 경험하면서 지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草衣禪師詩句 서예교육과 창작 작업을 동시에 하고 계신데 서로에 대한 어떤 영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면서 서예뿐 아니라 그림, 캘리그라피를 함께 하게 되는데 다양한 체본을 써주게 됩니다. 그럴 때,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구도가 나오게 되면 기억해 두었다가 제 작품을 할 때 응용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맘속에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면 왠지 부자연스럽고 썩 맘에 안 드는 경우가 많지만, 부담을 덜고 편하게 붓을 들 때 오히려 괜찮은 구도가 나오는 경우가 있지요菜根譚句-得意 요즘 서예에 관한 고민은? 서예에 관한 고민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글씨를 잘 쓰지?”, “글씨가 거친 것 같은데,,, 좀 편안하고 부드럽게는 안될까?” 등의 고민을 주로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많은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글씨만 썼습니다. 법첩임서와 공모전 출품을 하면서 글씨를 쓰는 서사능력은 향상 되었지만 이론에 대한 부족함을 절실히 느껴 이론 공부를 깊이 있게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현재 4학기 째 다니는 중입니다. 20대 젊은 시절에는 서예전공자가 “글씨만 쓰면 되지“하는 마음으로 이론공부에 등한시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너무 후회가 되고 안일하지 않았나, 반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菜根譚句 - 有生之樂 虛生之憂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 하고 계신 서예교육과 여러 작업들을 통한 최종 목표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이 ‘마흔 이전까지는 고전에 충실하고, 마흔 이후부터는 나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해보자’였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언제까지 왕희지 임서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저의 작품을 보는 감상자들이 작품을 보고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해 보는 것이 저희 최종 목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서예를 하게끔 해 주신 초등학교 은사님과의 전시를 구상 중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담임선생님 이셨는데, 제가 서예에 재능이 있다고 보시고 적극 추천해 주셨던 것이 지금까지 서예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은사님께서는 제가 학부 때 원광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전공으로 진학을 하시면서 계속 인연이 닿았습니다. 그 후에 저의 개인전에도 먼 길 찾아 주셨죠, 처음 함께하는 전시에 대해 제안 드렸을 때에는 사양하시다가 후에 승낙을 하셨지만 아직까지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꼭! 해보고 싶은 전시구요, 나중에 전시를 할 때 초등학교 동창들을 모두 초대하여 사제 간의 정을 돈독하게 다지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때 ‘글씨21’에서도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유난히 사람냄새 나는 작업실 탐방이었다. 어느 하나 시듦이 없는 화초들은 작업실을 더욱 활기찬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고, 오고가며 밝게 인사하는 아이들에게는 뭔가 즐거움이 느껴졌다. 김승민 작가의 작업실 탐방을 통해 서예의 교육과 서예작가의 삶에 대해 조금은 엿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서예 선생님으로서, 서예 작가로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며 소소한 꿈을 이뤄나가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꿋꿋한 청년, 작가 김승민의 작업실 탐방이었다.인터뷰 김지수 기자
[좌담회]
취중진담 I
한국 서예의 지금 바로 여기!‘글씨21’에서는 한국 서예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직언하는 ‘썰전’의 창구를 마련하였다. 서단의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솔한 서예인의 삶 이야기를 풀어낸다. ‘취중불어진군자(醉中不語眞君子)’라 했거늘, 음주 가운데 허튼 소리나 희언(戲言)을 삼가야 마땅하나, 때로는 취중에 속마음을 나누는 것이 오히려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차원에서 중진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각 연령대별로 서단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평소 경험하고 느껴왔던 생각을 술잔에 담아 ‘취중진담(醉中眞談)’의 포문을 열었다. 더위가 시작할 무렵, 홍대 앞 고깃집에서 ‘한국 서예의 지금 바로 여기!’를 주제로 20대~50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력은 필력이다’는 미명하에 그간 술자리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만 그쳤던 서단의 현실문제에 대한 담론과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견해가 공론화되었다. 이런 자리를 통해 서예계의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조성되고, 현실적인 제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고 공감대를 조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 서예인들이 보다 열린 마음으로 세대 간, 지역 간, 소속 간 벽을 허물고 상호 이해와 소통으로 한국 서단의 변화와 발전을 도모해가길 바란다.사회자 장지훈(글씨21 편집위원, 경기대 교수) \"취중진담\" 패널 연령대순류예나(대전대 서예디자인학과 조교)이광호(회천서예학원 원장)오민준(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상임이사)전상모(경기대 초빙교수) 게스트이상현(소울샵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Interview]
원로에게 길을 묻다 - 초정 권 창 륜
권창륜(1943생) 호(號)는 초정(艸丁), 단샘 등이며 경북 예천에서 권동진 어른과 윤수향 여사의 4녀 1남 중 네번째로 태어났다.서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현대 서예계의 거장이셨던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두 스승에게 사사 받았고 그들의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던 실력과 이론을 겸비한 인물이다.세한송백 歲寒松柏 34x47cm서예의 각 서체를 두루 섭렵하고 사군자, 전각, 문인화 등 다양한 서예의 분야를 개척했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인정되는 우리 서단의 대표적 서예가임은 틀림이 없다.실사구시 實事求是 163x35cm초정 권창륜과 여초 김응현일중 김충현 사시규흥 四時佳興 40x31cm1968년(28세) 제17회 국전에서 특선하면서 청년서예가로서 존재감을 알리게 되었다. 나아가 1977년(37세) 26회 봄 국전에서 석문명 필의로 창작한 작품이 대통령상 없는 최고상인 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서예, 문화계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다. 인터뷰 장면무학희해 舞鶴戱海 137x35cm황룡가화 黃龍嘉禾 70x65cm1977년 4월, 조선일보 - 제26회 봄 국전 국무총리상지금 그 작품을 봐도 37세 때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필력과 작품 구성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젊은 청년 서예가들 뿐 아니라 서예인 모두에게 큰 자극이 될 만하다. 추수위신 秋水爲神 185x35cm한때 대한민국 서단에 파란을 일으켰던 촉망받던 청년작가가 세월이 흘러 어느덧 원로라는 이름으로 후학들에게 권창륜의 서예 이야기를 전해 주고자 한다.현재 70대 중반의 노령임에도 올곧은 몸과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선생께 살아온 세월과 서예, 후배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그의 묵직한 글씨처럼 응축된 50년 서예인생의 역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인터뷰 성인근(편집주간)
[Interview]
백악미술관 윤영수 관장을 만나다
백악미술관은 서예가 일중 김충현 선생께서 후학을 위해 설립한 서예·문인화 전문 미술관으로 서예·문인화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미술관이다. 또한 우리나라 문화의 중심, 인사동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백악미술관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전시 감상뿐 아니라 쉼과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백악미술관의 윤영수 관장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이러한 학력을 바탕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재무업무를 해왔으며, 현재 백악미술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일중 김충현 선생의 깊은 뜻을 헤아려 미술계의 활발한 창작과 전시경영 활동에 앞장서며 그 뜻을 이어오고 있다.글씨21은 이번 기획취재에서 백악미술관 설립배경과, 의미, 역할에 대해 재정립하고 앞으로 서예·문인화가 더 이상 도태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 현재 누구보다 그 실정을 잘 느끼고 있는 윤영수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2018. 2. 19글씨21 편집실
[담론]
기획 좌담회 담론 1
21세기 한국 전각(篆刻)의 현황과 전망 ‘글씨21’에서는 한국의 서예와 캘리그라피, 그리고 그 주변에 대한 현황을 점검하고 문제점과 전망까지 논의해보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21세기 한국 전각(篆刻)의 현황과 전망’이란 주제의 담론을 5월 15일 ‘안국동차관’에서 가졌다.전각이 서예를 근간으로 한 새김의 조형예술이며 하나의 고급예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대 한국 전각의 모습이 질적 성숙도와 저변의 확산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에 현장의 연구자와 작가들을 모시고 한․중․일 삼국의 비교적 관점에서 현황을 들여다보았다. 이러한 논의가 한국 전각계의 긍정적 토론의 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1. 중국 전각의 현상과 지향점2. 일본 전각의 계승양상과 현상3-1. 한국 전각의 계승양상과 현황3-2. 한국 수제도장(상업전각)의 현상과 진단참석자 가나다순고재식(칸옥션 대표)김희정(한국서가협회 수석부이사장)민승준(선으로 가는 선 서예도서관 관장)윤종득(서․화․전각가)이두희(경남과기대 벤처경영학과 외래교수)장운식(캘리존, 새김소리 대표)사회성인근(글씨21 편집주간)글씨21 편집실
[Interview]
원로에게 길을 묻다 - 샌날 조 성 자
원로에게 길을 묻다- 샌날 조 성 자 - 소년문장은 있어도 소년명필은 없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서예에 시간을 투자했다하여 글씨를 잘 쓴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서예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천부적 재능을 동반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아가 잘 쓰는 글씨에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실험으로 남과는 다른 긍정적인 뭔가를 보여 주었을 때 우리는 서예가, 또는 예술가라 명명하기도 한다. \'글씨21\'에서는 이러한 요소에 중점을 두고 현존하는 원로작가 중에서 기획의 취지와 알맞은 작가를 초대하여 원로가 살아온 서예의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서예철학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또한 본 기획은 한국서예사의 한 장면이 될 것이며 영상기록물로 남겨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한다. 이미 세상을 등진 몇몇 훌륭한 대가들의 육성과 영상을 남기지 못한 것이 통탄할 일이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현존하는 원로작가들의 서예철학과 정신을 남겨 한국서예의 보물로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첫 번째 초대작가로 샌날 조성자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다.주지하다시피 샌날 조성자는 궁체의 형식을 탈피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험하고 갈망하는 몇 안 되는 한글서예가이다. 한글궁체., 그것을 탈脫 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얘기들을 우스갯소리로 하곤 한다. 벗었다 한들 뭔가 어색하고 추하게 표현되기가 일쑤이기 때문에 함부로 달려들지 않는다. 하지만 본질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창작물을 형상화하는 몇몇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서예, 한글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심어주신 월계꽃...새벽빛에 비추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너무나 좋아하여 ‘샌날’이라는 호를 얻은 샌날 조 성 자1984년 중앙일보 문화센터 회원들과의 인연으로 ‘해오름한글서회’를 창단하고 후학들을 위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한글서예의 교본을 출간갈물 이철경, 꽃뜰 이미경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수요회원들과 함께 창경궁 장서각에서 고서들을 대여하여 직접 눈으로 보고 임서를 하며 공부할 수 있었던 영광오로지 우리나라의 글이기에 ‘한글’을 한평생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사람. 작품 세계에 자신의 인생철학을 투영시키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샌날 조성자의 서예인생을 돌이켜보고자 한다.인터뷰 김지수 기자
[Talk]
이상현의 캘리톡톡3
붓을 잡은 연기자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가‘이상현의 캘리톡톡’은 대한민국 대표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가와의 대담으로 총 3회 진행됩니다. 순수미술에서의 글씨, 상업디자인에서의 캘리그라피, 퍼포먼스까지 이상현작가의 솔직담백한 캘리그라피 이야기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Talk]
이상현의 캘리톡톡2
붓을 잡은 연기자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가‘이상현의 캘리톡톡’은 대한민국 대표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가와의 대담으로 총 3회 진행됩니다. 순수미술에서의 글씨, 상업디자인에서의 캘리그라피, 퍼포먼스까지 이상현작가의 솔직담백한 캘리그라피 이야기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Interview]
이 작가의 思생활, 황석봉
전통서예와 현대서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예가 시몽 황석봉“그저 서예가 생각나고, 또 생각났다. 너무나 좋고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예가 시몽 황석봉 선생에게는 물질적 사회에 부딪혀 몇 차례 붓과의 관계가 소홀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저 서예가 생각나고, 또 생각나서 좋고 계속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예계의 극한 위기의식을 느낀 그는 서예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공감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시도하게 된다. 시몽 선생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그에 대해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미 서예계나 매스컴에서도 노출이 되었던 분에 대해 조사를 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다양한 활동들 안에서 그가 진정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인터뷰 전문 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