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길을 묻다
근원 김양동21세기 서예문화 생태계를 말하다 김찬호(미술평론가,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20세기를 넘어 21세기 초반을 달리고 있다. 2020년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전지구적 위기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인 팬더믹(pandemic) 현상은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에 패러다임적 전환이 필요하다. 글씨 21에서 기획한 담론 21세기 지금의 시대는 서예문화 생태는 살아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논의했다. 담론의 중심은 한국 서예 원형을 통한 정체성(identity) 찾기다.燕巖 선생 文論, 210x70cm,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天風海月, 48x38cm, 1995년반야바라밀다심경, 106x60cm, 2002년학의 꿈, 37x42cm, 2012년역사 속에서 기호와 상징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우리 사이를 이어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시미술의 기호와 상징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 서예문화 발전에 많은 영감이나 내용을 채워줄 수 있다. 특히 김양동 교수님이 쓴 한국 문화의 원형을 탐색한『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양동 교수는 “서예의 출발이 획이다. 중국도 앙소문화의 도편(陶片)을 중국 한자의 시발로 보고 있고, 그 자체를 서예의 시초로 보고 있다. 그것을 보고, 한국의 서예의 기원도 광개토대왕비, 청동기 시기의 암각화 등 신석기문화에서 서예의 기원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점에서 출발했고, 빗살무늬토기에 주목한 이유다.”라고 했다. 우리 선사 문화를 통해 문자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김양동 교수는 ‘빗살’에서 ‘빛살’로의 해석의 전환을 해 놓았다. 교수님의 연구는 고고학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징검다리다. 그 하나의 징검다리가 누구나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고대문화가 오랜 삶의 누적에서 형성된 사유의 축적이라면 그 안에는 반드시 어떤 원리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 고대문화의 기원, 발생, 형성, 전개가 중요한 열쇠다. 자물쇠가 있어야 열쇠가 있고, 열쇠는 자물쇠를 열고 닫을 수 있는 기능을 했을 때 의미가 있다. 서예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 이는 서예에 대한 지평을 확장 시키는 작업이고 그런 점에서 서예 생태계에서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은 중요하다.光前啓後, 70x210cm, 2016년, 계명대학교 소장한국미의 원형, 115x152cm, 2005년筆歌墨舞, 208x144cm, 2004년八分小篆歌, 184x270cm, 2004년지금의 한국서예 모던(modern) 한가? 21세기 예술은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동시대 미술로 변화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서예는 여전히 근대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비평과 담론의 부재다. 서예의 근대성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작품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친숙한 대상을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서예 근대성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 김양동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에 書’에서 한국 근현대서예를 조명하는 글을 발표했다. 한국의 서예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서예의 근대성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미래의 서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는 서예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이다. 개념이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예술에서의 창작은 전통을 해체하면서도 원형을 추구하는 것이며, 원형을 추구하면서도 현재성을 담아내려는 노력이다. 원형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전통을 복원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 원형의 정신과 문자적 소재들이 지금 그리고 여기, 현대와 탈현대의 혼돈한 교차점에서 야기하고 있는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서예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자는데 있다. 이번 담론이 서예의 원형에 대한 탐색을 통해 서예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정체성을 찾아 미래로 나아가는 또 다른 모색의 시간이었으면 한다.고대 신(神)의 이야기, 186x95cm, 2008년象村 申欽 詩 雜興, 48x75cm, 2008년예양동교(汭陽東橋), 43.7x45cm, 2005년, 野松미술관 소장한민족문화의 시원-태양과 신조, 149x210cm, 2008년쓰는 것이 그리는 것이고, 그리는 것이 곧 쓰는 것이다. 쓴다, 그린다는 것은 하나의 퍼포먼스(performance)다. 이응노(李應魯), 남관(南寬), 오관중(吳冠中), 모네, 호안 미로, 잭슨 폴록도 다 쓰고 그린다. 쓴다, 그린다는 말보다 무엇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서예는 쓴다고 생각 한데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본다. 타성화된 현실, 화석화된 전통에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글씨21 담론] 이길원과 고범도의 서예 이야기
[글씨21 담론] 이길원과 고범도의 서예 이야기글씨 21에서 기획하고 아트센터 일백헌에서 주최하는 2020 창작지원 프로젝트가 이길원展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 전시를 위해 오랜만에 붓을 들었다는 이길원 작가는 상처·불안·걱정 등 어두운 감정과 자유를 상징하는 ‘새’를 통해 작가의 예술세계를 드러냈다. 전시장 전경작가가 50년 인생을 보내면서 얻게 된 하나는 ‘지금, 오늘, 후회 없는 하루를 살자’이다. 그래서 얻게 된 ‘설조산방(雪爪山房)’ 당호는 작가에게 큰 의미가 있다. 눈밭에 찍힌 갈매기 발자국을 보며 보이지 않는 갈매기를 찾는다. 그런데 이 발자국마저 눈이 녹으면 사라진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도 좋지만, 지금의 내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현상보다 본질에 집중하게 된 순간 작가의 뜻이 가는 대로 붓이 움직이며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해졌다고 고백했다. 고범도와 이길원서예를 전공하고, 전각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이길원은 서예·전각·회화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 아픔과 슬픔, 미움과 원망 등 내면의 어두운 감정에 주목하여 예술로 소통하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2020. 10. 23글씨21 편집실
학정 이돈흥 선생 1주기 추모전 인영갤러리 문웅 인터뷰
학정 이돈흥 선생님 1주기를 맞아 \'쓸수록는다\'전시장 전경어느 학문을 하면서 수십 년을 지도받은 분야가 있으랴?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중 대학에서는 한 학기 수업만으로도 사제지간이 된다. 그러나 한 과목에 대해 몇십 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배워가는 과정은 예술의 세계일 것이다. 더구나 서예는 스승으로부터 체본을 받고, 또 수없이 습작하여 검수를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 나간다. 실로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시간이 쌓이면서 배움은 이어진다. 서예는 붓 한 자루, 먹 하나, 벼루 한 개, 종이 몇 장이면 입문이 가능하고 누구나 붓에 먹을 묻혀 종이 위에 점을 찍고 획을 그으면 글씨가 된다. 그리고 얼마 동안 습작을 한 다음, 한자나 한글을 서체에 따라 공들여 써놓으면 서예작품이 된다. 언뜻 생각하면 서예란 참 간단하고 손쉬운 작업인 듯하다. 그러나 서예는 그렇게 손쉽고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스승에게서 열심히 법첩(法帖)이나 서사 이전의 정신적·철학적 내면성을 꾸준히 수련해야 하는 예술이다. 전시장 전경실로 기술이 아닌 심성의 표현이고 형이상학적 추상 세계이기에, 작가는 ‘쟁이’가 아니라 ‘선비’라야 하고, 선비란 학문과 인격을 갖춘 지성인인 것이다. 옛사람의 명문(銘 文)이나 뛰어난 사람의 필적을 자주 본다. 그것을 쓴 사람의 심혼이 담겨 있는 필적인 만큼 보는 사람의 마음도 절로 높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취미생활 중에 꼭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혼자서 즐길 수 있고,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나이가 들면 못 하는 것이 아니고, 더 원숙한 경지에 이르게 되어 무르익은 작품이 나온다. 그리고 이보다 더 경제적인 취미생활은 없을 것이다. 먹과 종이 만 준비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오래도록 많이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매료된 것은 그 어떤 취미생활도 학문적인 공부까지 겸하는 것은 없는데, 서예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하는 것은 물론 5체(楷, 行, 隸, 草, 篆書)를 두루 익히면서 이 세상의 언어들을 고루 섭렵하게 된다. 선생님은 내 아호를 한 편의 시로 작명해주셨다. 인 영=인장고 영춘풍(그 어떤 어려움도 고통스러운 것들도 오래 참고 이겨내면, 마침내 따스한 봄바람처럼 좋은 일을 맞이할 것이다) 인장고 영춘풍 · 201×70cm / 일편심 · 137×35cm / 입처개진 · 133×33cm 붓글씨는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 한국에서는 서예(書藝)라 일컫는다. 이 말은 그 정신과 심오함이 다른 도나 법 예술에 못지않은 엄격함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뜻하는 증좌(證左)이다.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서(書)는 교(巧)를 엄격히 배제하고 있다. 잘 쓰는 글씨는 힘이 있고, 소박하여 매우 자연스럽다. 사람의 인격이 꾸며서는 되지 않는 것처럼, 글씨도 꾸며서는 좋은 글씨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과 글씨는 격(格)을 따진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서예는 서격(書格)이 있다. 서격이 좀 나은 글씨라도 쓴 사람의 인격이 떨어지면, 서격(書格)마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서예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인격이 손상되는 마음가짐과 언행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한 컴퓨터 시대일수록, 온 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모 든 것들을 내게 알게 해주신 분이 있으니 그분이 바로 학정 이돈흥(鶴亭 李敦興) 선생님이시다. 모든 학문은 계보가 있다. 나의 스승님의 계보는 이러하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고유 서체가 된 동국진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하석 선생의 글에서, ‘학정체’, ‘신동국진체’라 하였으니 동국진체의 계보를 살펴본다. 동국진체는 윤순의 서법을 계승한 원교 이광사(員嶠 李匡師,1705∼1777)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는 윤순에게 서예를 배우면서 그 능력을 칭찬 받았다. 이광사는 왕희지의 서첩들이 모두 오래되고 변모를 거듭하여 왕희지 본색을 알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전서·예서를 통해 심획을 얻은 후, 다시 왕희지의 서법으로 바르게 나갈 수 있다고 깨닫는다. 여기에서 조선 고 유의 동국진체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고유한 색을 드러내며 문화가 발전을 이룬 18세 기에 서예 분야에서 옥동 이서가 서법을 정립한 것이 원교 이광사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조선 고유의 서체를 뜻한다. 백하 윤순(1680~1741)의 문하에서 동국진체(東國眞體)로 유명한 원 교 이광사(1705~1777)가 나오는데, 원교의 서예 세계는 중국서예의 관념론적 굴레를 벗어나, 조선 혼(魂)이 담긴 진경산수화 시대의 선두주자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최한선 박사). 원교의 문하에서 조선의 3대 명필로 추앙되는 창암 이삼만(1770~1845) 이 나오고, 영재 이건창(1852~1898), 설주 송운회(1874~1965), 송곡 안규동(1907~1987), 학정 이돈흥(1947~2020.1.18.)선생을 사사하면서 서예에 입문하는 나(인영 문 웅, 1952~ )는 이런 어른들의 축에는 감히 들지 못하지만, 내 평생에 이런 훌륭하신 스승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어른들의 작품들을 차례로 소장하게 되었다. 한 시대에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다. 내가 나의 스승님을 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스승님과 書論을 나눈 이 시대의 대가 이신 하석 박원규(何石 朴元圭) 선생의 신문기사를 먼저 싣고 나의 얘기를 쓰고자 한다. 해서와 초서 가장 흐드러지게 쓰던 한국 서단의 거목현대 한국 서단에서 해서와 초서를 가장 흐드러지게 쓰는 명필가가 18일 73세를 일기로 세 상을 떠났다. 학정(鶴亭)이돈흥 선생. 동갑으로 20대 초반에 만나 함께 보낸 세월이 50여 년, 나와 생일도 딱 일주일 차이인데 그가 세상을 먼저 등졌다. 서예가 이돈흥 ‘동국진체’ 계승 ‘학정체’ 개척 호남 서예 명가들의 맥 이어 1947년 담양 태생인 학정은 전남대 섬유공학과 1학년 당시 교장이었던 부친의 권유로 송곡(松 谷) 안규동 선생을 찾아가 서예에 입문했다. 그는 전남에, 나는 전북에 살았고, 대학도, 전공도 달랐지만 서로 친했던 송곡 선생과 강암 송성룡의 제자로 처음 만났다. 학정은 호남의 명가 들, 즉 송설주 선생-소전 손재형 선생으로 이어지는 서예의 맥을 정통으로 이은 한국 서단의 거목이었다. 원교(圓嶠) 이광사(1705∼1777)와 추사(秋史) 김정희의 전통을 계승, 자유분방한 필치에 해학과 여유까지 담아낸 조선 고유의 서체‘동국진체(東國眞體)’의 전통을 이어온 주역이다. 학정은 전통 계승에 만족하지 않았다. 동국진체를 바탕으로 중국 명가들의 서풍을 섭렵해 독자적 서체를 개척했다. 이른바 ‘학정체’다. ‘신동국진체’라 불리기도 하는 학정체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정감 있고, 또 흐드러진 꽃처럼 무르익은 그의 솜씨를 보여준다. 학정 형이 27세에 만든 학정서예연구원에서 후학 3만여 명을 배출했고, 이 중 상당수가 중견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와 의기투합해 2005년 1월 서울 인사동 공평아트센터에서 마련한 ‘삼문전’은 잊을 수 없다. 학정과 나, 그리고 소헌 정도준 셋이 서로 왕래 가 없는 문하생 45명의 전시를 함께 연 자리였다. 폐쇄적인 한국 현대 서단에 ‘충격’을 던진 자리였다. 글씨에 대한 자부심뿐만 아니라 선의의 경쟁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다. 이 의기투합은 2012년 ‘서예삼협파주대전(書藝三俠坡州大戰)’으로 확대됐다. 한길사에서 학정과 나, 그리고 소헌이 함께 작품집을 내고 기념전시를 크게 연 것 이다. 20세기 한국 서단의 거장인 강암과 송곡, 일중(김충현) 문하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 세 사람 이 칼이 아닌 붓을 들고 벌인‘진필 승부’의 자리였다. 국립 5·18 민주묘지는 물론, 화엄사, 해인사, 송광사, 대흥사, 불국사, 범어사 등 전국 유명 사찰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학정은 더는 한국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글씨 얘기를 할 친구가 없어서 서둘러 이승을 떠났나 보다. 저세상에서 추사도 만나고, 명의 왕탁도 만나고, 송의 황산곡도 만나 글씨를 쓰고 있지 않을까. 천국에도 명필이 간절히 필요했나 보다. 하석(何石) 박원규 서예가·한국전각협회 회장 [출처: 중앙일보] [삶과 추억] 일속 오명섭 · 쓸수록는다 / 학정 이돈흥 · 수강나는 다른 제자들처럼 전념으로 서예를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일들이 따로 있으니, 필력이 늘지 않아 늘 선생님께는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럴 때마다 “인영, 눈으로도 는단다. 항상 서예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한 눈만 팔지 마라.” 하셨다. 서예는 독습이 안 된다. 선생님의 붓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아, 그 획은 이래야만 나오는구나.’ 했다. 체본을 받으면서 “저는 왜 선생님처럼 획이 잘 안 될까요?” 했더니, “그러면 나는 그동안 뭐 했냐?” 어찌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내가 선생님을 찾아뵐 때마다 붓을 손에서 놓으신 적이 없이 글씨를 쓰셨다. 조금 나와 대화를 나누시다가 바로 또 붓을 잡으신다. “선생님, 또 쓰시게요?”“쓰면 쓸수록 느는데 어떻게 안 쓰겠냐?” 세상에! 나는 무얼 하고 지냈는가? 눈으로도 는다니까 붓은 안 잡고 눈으로만 쓰고 있었다니……. 그래도 44회(2020)까지 이어온 연우회전에, 2011년에 연 30회를 출품했다고 선생님이 이렇게 내게 상으로 작품을 주셨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국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200여 장을 습작하면서 좀 자신감이 붙고 재미가 있었다. 5년 뒤에는 기어코 스승님을 따라붙겠다고 다짐했는데, 5년이 지나고 나니 이젠 10년 후에나 따라붙을까? 그때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럼 나는 그동안 쉬고 있을 것 같으냐?” 하신다. 또다시 20년이 흘러도 스승님의 흉내도 못 내겠더라. 아니 20년이 아니라 한 세기가 바뀌어도 스승님의 한일(一)자 하나도 따라갈 수가 없다. 내가 국전에서 특선을 하고 나서는 더 더 선생님이 큰 바위처럼 느껴졌다. 2019년 11월의 연우회 43회전 작품 <일편심 一片心>을 우리 집 인영헌에서 쓰셨다. 그리고는 나에게는 <立處皆眞 隨處作主 立處皆眞 己亥晩秋 紅葉飛天時 於 忍迎軒 鶴丁 病中 作입처개진 수처작주 입처개진 기해만추 홍엽비천시 어 인영헌 학정 병중 작> [머무는 곳이 어디든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참된 세계니라]—임제록(臨濟錄) : 중국 불교 臨濟宗의 개조 義玄의 법어를 수록한 책과 <일편심>을 써주셨다. 2019년 늦은 가을 붉은 잎사귀가 하늘에 날리는 때에, 인영 문웅집에서 학정이 병중에 쓰다.- 라고 마치 추사가 봉은사 판전(板殿)을 쓴 지 3일 후에 작고하신 것처럼, 선생님은 이 작품의 붓을 마지막으로 잡으시고 다시는 붓을 잡지 못하시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작품을 남겨주셨는가? 지금은 그 얼마나 붓을 잡고 글씨를 쓰고 싶으실까? 아니면 그곳에서는 아픔도 없이 더 많은 작품을 쓰고 계실까? 4년여 동안 식도암으로 투병하시다가 마지막 4개월을 서울의 요양병원에서 치료하고 계실 때 이틀이 멀다 하고 문안을 드렸을 때 선생님께 보낸 문자 메시지다. “선생님 저는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님이 46세에 저를 낳으시고 아버님은 5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두 형님이 계셨는데 두 분 다 60을 못 넘기시고 단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세 누님이 항상 ‘막동아! 이제 너 하나만 남았다.’ 하셨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둘째 형님의 나이와 선생님이 동갑이셔서 스승님으로, 또 형님같이 저를 지켜주시고 가르쳐주고 계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미력하나마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우리 선생님의 든든한 후원과 버팀목은 저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주고 계십니다.저에게는 다른 제자 분들과는 다른 나만의 애정법이 있습니다.제발, 제발 어서 나으셔서 예전처럼 저를 지켜봐 주셔야 합니다.”“나도 눈물 나~네” 장례를 쭉 지켜보면서 인생의 허무를 또다시 느끼게 한다. 화장을 하고 담양 선산에 40센티도 안 되는 사각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유골을 담은 도자기 하나 넣고 평분(平墳)으로 잔디를 덮으니, 한 시대를 살면서 그토록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시던 위대한 서예가이며 학자이신 스승님의 일생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남은 자들에게 남기신 교훈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만드셨다. 부모님을 여읜 후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참 효도는 부모님이 기뻐하시도록 잘 되는 것이다. 우리 후학들이 선생님의 유훈대로 더 정진하여 ‘학정의 제자답다.’라는 말을 듣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담양군에서 <학정서예관>을 지어서 선생님의 작품800여 점과 유품, 아카이브 등 1,000여 점을 보관하여 기리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이에 더하여 일생서예와 학문에 매진하신 공을 인정받아 2019년 10월 19일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으셨다. 선생님 손에 의해 묻힌 유묵 한 점 한 점이 모두가 소중하다. 이에 오늘 나는 그동안 내 개인적으로 곳곳에서 모아온 60여점의 선생님 작품들만을 모아서, 선생님 1주기를 맞아 조촐한 전시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한 노인이 세상을 떠나신 것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 것과 같다’더니 학정의 육신은 갔지만, 그분의 작품들과 정신만은 영원히 남으리라.2021. 1. 18忍迎 文 熊 (前.敎授·藝術學博士)<전시 정보>학정 이돈흥 선생 1주기 추모전 \'쓸수록는다\'전시기간 : 2021. 1. 18(월) ~ 1. 30(토)전시장소 : 인영아트센터 3층 인영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23-4)전시문의 : 02-722-8877
필묵 속에서 자유를 찾다
(사)일중선생기념사업회 ≪우수작가 초대전≫ 신산 김성덕 서전 인터뷰지난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백악미술관에서 (사)일중선생기념사업회 ≪우수작가 초대전≫ 신산(信山) 김성덕 서전(書展)이 열렸다. (사)일중선생기념사업회가 2014년부터 주관하고 있는 ≪우수작가 초대전≫은 현재 서예계에서 주목받는 중견작가의 전시를 개최해 새롭게 변모해가는 한국 서예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데 그 취지가 있다. 전시 개최에 앞서 글씨21에서는 신산 김성덕 선생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번 전시와 김성덕 선생의 필묵에 관한 담백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글로 옮긴다. 필묵 속에서 자유를 찾다서예가 김성덕 인터뷰 김성덕: 서예가성인근: 경기대학교 교수 때: 2021. 2. 26곳: 글씨21 성: 오는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김성덕 작가의 백악미술관 초대전에 앞서 전시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서예가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현시점에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중에게 친절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계기로써의 의미도 있습니다. 김성덕 작가님은 한국에서 대학 서예가 시행된 이른 세대의 그룹들 가운데서도 서예의 본질을 순정하게 추구하고 계신 몇 안 되는 작가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매우 많은 시간을 작업에 몰두하고 계신 줄 알고 있는데 말문을 여는 차원에서 선생님의 작업 외의 시간이 궁금해졌습니다. 서예 외의 시간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보내시는지요? 김: 일부러 특별한 다른 취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서예 외에는 주로 산책을 합니다. 그렇게 하루에 2-3시간씩 늘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성: 작업과 작업 외의 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장치로 산책을 활용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김: 네,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산책하며 떠오를 때가 있고, 걷다 보면 작품에 대한 구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건강차원에서도요. 전시장 전경성: 어떤 분들은 ‘생각이란 발에 달려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작업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산책을 즐긴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전시가 백악미술관에서의 초대전인데, 백악미술관에서 서예가를 초대해서 지원하는 제도가 언제부터 어떤 계획으로 실시되고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김: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일중서예대상과 우수작가상으로 나누어 시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1년에 한 번씩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2년에 한 번씩 하고 있어요. 우연히 선정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발작가에게 전시장 제공과 전시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성: 서예가들에게 흔치 않는 기회제공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가 개인전으로서 몇 번째고 현재까지 작품의 방향, 성향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얘기해주시죠.김: 이번이 두 번째고 10년 만에 하는 전시입니다. 우수작가상 선정 이전에 이 전시를 기획했는데 우연히 상과 맞아떨어져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향성과 변화 양상... 글쎄요, 별로 변화가 없더라고요(웃음). 변화하고 싶은데 잘 변하질 않습니다. 못할 것 같으니까 깊이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신산 김성덕 · 春風.秋水 · 20×135cm×2 성: 예. 변화라는 게 어떤 외적인 변화, 형식적인 변화도 있겠지만, 선생님이 방금 말씀 하셨듯이 지킬 건 지키면서 그 안에서 깊이를 더해가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왔다고 이해됩니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이번 전시에 출품하실 작품 이미지를 보내주셔서 어제 하루 종일 나름 행복하게 보고 왔습니다. 주로 한문서예가 대부분이며 한글서예가 두 점 정도 포함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이한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보통 우리가 한시를 쓰면 한자로 시 원문을 쓰고 협서를 쓰는 방식인데,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을 한글로 쓰고 그 옆에 협서로 한문의 원문을 쓰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발상의 전환인 셈입니다. 김: 전에도 이런 작품을 한두 번 했었는데, 한시 가운데 뜻이 명쾌하게 드러난 문장만 했습니다. (성: 네, 한글로 봐도 이해가 되는..) 네, 그 정도 된 작품을 했기 때문에 한글이 주가 되고 한문이 부수적으로 된 것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형식을 바꿔서 운치 있게 해보고자 했습니다. 신산 김성덕 · 趙憲 雙溪石門詩 · 40×180cm성: 이번 전시는 한문서예 위주이고 한글서예는 두 점 정도 출품하셨는데, 한글은 사실 우리글이고 우리말이기 때문에 서예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한글서예의 미래적인 가능성, 가치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김: 이번 작품은 한문 위주로 썼었는데, 한글서예도 도전해볼만한 좋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특히 자기감정을 그대로 표출할 수 있기는 장점이 있죠. 예를 들어서 한글에 초서를 가미해서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신산 김성덕 · 춘향가 중에서 · 90×150cm성: 최근에 선생님 말씀대로 한글에 행초서의 흐름을 가미해서 쓰는 작가들도 있더라고요. 서예가들이 한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연구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조금 더 형성되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제 한문서예에 대한 본격적인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선 서예에서는 획질(劃質)을 중요시하죠. 어떤 사람 글씨에서는 나무와 같은 질감이 느껴지고도 하고, 어떤 사람의 글씨는 돌같이 파삭파삭하면서도 단단한, 어떤 사람의 획에서는 유려한 물 같은 성질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건 개인적인 성향과 그 작가의 성정이 자연스레 묻어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작품을 보면서 느껴지는 획의 질감은 금속(金屬)에서 나타나는 어떤 기운을 개인적으로 느꼈습니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쇠맛’ 같은 느낌입니다. ‘획(劃)’이라고 하는 것은 붓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평소 용필(用筆)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김: 획의 성질이 기운생동함도 좋긴 한데, 사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부드러움입니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는 그게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 생각해도 딱딱한 느낌이 들어요. (성: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싶다..) 네, 중국 현대작가 심붕(沈鵬, 1931~ )의 젊었을 적 작품을 보면 부드러우면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이 있더라고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가고자하는 방향입니다. 저는 글씨 쓰는 자세가 다른 사람들과 약간 다릅니다. 바닥을 선호하는 편인데 평상시에는 일주일에 하루․이틀만 바닥에서 씁니다. 힘들어서(웃음). 30대부터 바닥에서 쓰다 보니 무릎이 아파서 서예를 더 하려면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 싶어서 주로 책상에서 쓰고 바닥은 이틀정도 씁니다. 성: 바닥과 책상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김: 시야가 넓습니다. 그리고 흐름이 깨지지 않습니다. 성: 선의 변화는 어떨까요? 김: 선의 변화도 많죠. 물론 현완(懸腕)으로 쓰면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요. 예를 들어 벼루를 두 개 놓고, 혹은 대작하면 세 개 놓고, 위치에 따라 먹을 묻혀가면서.. 거기서 오는 자유스러움이 좋습니다. 성: 조금 더 유연해지고 싶다, 아직은 딱딱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부분이 한국 서예와 중국 서예의 특성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중국서예는 유려하고 부드럽지만 골기(骨氣)가 부족해 보이기도 하며, 현대의 한국서예는 전예(篆隷) 중심, 특히 중봉을 중요시 여기면서 단단하게 써오는 흐름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런 국가적 경향성이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맞습니다. 그리고 도구에서 오는 차이도 있고요. 저는 이번 작품을 붓 두 자루로 했습니다. 하나는 16cm 되는 긴 장봉과 하나는 무심필 이렇게 두 가지로 했습니다. 요즘은 글씨의 유연함과 유려함을 위해 행초 위주로 임서하고 있습니다. (성: 주로 어떤 자료를?) 요즘은 서위(徐渭, 1521~1593)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성: 서위가 갖는 매력이 뭘까요?) 제가 보지 못했던 자연스러움이 있더라고요. 중봉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 있어요. 전시장 전경성: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방향으로 나가고 싶다는 획에 대한 방향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예에서는 획이 중요하지만 먹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도 중요할 것 같고, 전체 화면에서 공간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의 문제도 작가에겐 큰 고민일 것 같은데.. 김: 저는 공간 구성을 할 때 첫 줄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첫 줄을 써놓고 그 다음부터는 거기에 맞춰서 공간을 잡아나갑니다. 예를 들어서 장단(長短), 대소(大小), 비수(肥瘦) 등의 관계가 첫 자를 시작함과 동시에 기준이 되고 이후에 변화합니다.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흐트러지기도 하고.. 보통 작품은 처음 썼던 것이 가장 자연스럽더라고요. 임서는 많이 하되 창작할 때는 한 번으로 끝내야 해요. 성: 그런 부분이 서예라는 장르가 가진 특징이 아닐까 싶네요. 회화 같은 경우에는 고민도 많이 하고 조금 더 고치고 계산해 나가기도 하지만, 서예는 에너지를 쌓아서 한 번에 만들어 내는 일회적인 것, 그게 서예가 가지는 특징이자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 저는 집자 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반면, 작품 할 때는 자유롭고 유연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신산 김성덕 · 毛公鼎臨 · 97×180cm성: 이번 출품작이 전서, 예서, 행초를 포함한 초서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의 서체씩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 우선 선생님 전서 작품의 경향은 모공정을 임서한 작품도 하나 있었고, 대개 금문 위주입니다. 앞서 선생님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선의 질감을 ‘금속의 맛’으로 말씀드렸는데, 금문 학습의 영향이 선생님 획 안에 녹아들어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 15년 전까지만 해도 금문 임서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따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에 제가 금문을 좋아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전서를 많이 쓰셨던 醉墨軒(취묵헌), 소헌(紹軒), 하석(何石) 선생님의 글씨를 많이 따라 썼어요. 임서보다는 차용이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금문을 잘 쓰려면 행초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 네, 선생님 금문에서 행기(行氣)라고 하나요, 유동적인 흐름이 많이 노출되는 것 같았습니다. 김: 금문을 쓸 때 행기를 넣지 않으면 너무 박제화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금문을 쓰되 행초 느낌으로 쓰고 있습니다. 신산 김성덕 · 晏子句 · 33×175cm성: 모공정 임서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역입(逆入)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선을 그어가는, 그러면서 금문의 조형들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으로 임서하고 계시더라고요. 김: 역입을 하면 얽매여 딱딱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금문 쓸 때만큼은 좌에서 우로도 쓰고, 우에서 좌로도 쓰고, 밑에서 위로도 쓰고 그럽니다. 글자 한 자 한 자에서요. 성: 한자의 필순(筆順)이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가 기본적인 건데 솔직히 그 때 그 사람들이 다 지켜서 썼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글씨를 쓰는 사람마다 조형을 만드는 데 편리한대로 썼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거든요. 김: 자연스러움도 좋지만 어느 정도 절제력은 필요한 것 같아요. 신산 김성덕 · 隸書 四首 · 45×200cm×4성: 그렇죠. 자유로움과 법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여기에서 현재적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예서 얘기로 넘어갈게요. 선생님 예서는 한비(漢碑)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나라 민간에서 썼던 간독(簡牘) 자료들의 영향이 커 보입니다. 금문에서도 그렇고 거기에 유연한 흐름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계신데, 선생님 예서가 변화되어온 과정을 말씀해 주시죠. 김: 예기비(禮器碑), 사신비(史晨碑) 위주로 임서하다가 한국에서 목간이 유행했을 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지금은 작품 할 때 따로 경계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한예를 집자해서 목간처럼 쓰기도 했습니다. 청대의 이병수(伊秉綬), 진홍수(陳鴻壽)의 글씨에도 좋은 글꼴이 있거든요. 따로 특정 자료를 고집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나올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추사 글씨를 보다가 청대 글씨를 다시 보니까 이병수, 진홍수의 글꼴과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그것을 추사는 추사스타일로 발전시켰던 거죠. 오히려 이병수, 진홍수의 예서가 순수하게 쓴 작품들이 있거든요. 거기에 내 행기를 넣고 나만의 글꼴을 넣었던 것 같아요. 전시장 전경성: 네, 어떤 서체를 보던 행기가 전반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행기 얘기가 나왔으니까 행서, 초서 얘기를 할게요. 선생님 작품에서 느껴지는 행서는 주로 명말청초의 여러 작가들, 특히 부산(傅山)이나 왕탁(王鐸), 서위(徐渭) 등의 매우 자유분방하면서도 낭만적인 경향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이 추구하시는 초서, 행초의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김: 처음에는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顏眞卿) 글씨를 많이 썼고, 나중에 왕탁과 부산 등을 썼습니다. 계속 하다 보니 왕탁보다는 부산이 맞는 것 같았어요. 아직까지는 변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신산 김성덕 · 百尺竿頭進一步 · 30×41cm성: 물론 지금의 작품들은 큰 글자들로 썼기 때문에 부산의 대자초서(大字草書) 느낌이 많이 나는데, 그 하나하나의 글꼴들이나 흐름들을 쫓아가보면 부산의 천자문과 같은 소초(小草)의 영향이 저한테는 느껴지더라고요. 김: 부산의 천자문은 써본 적이 없는데, 제가 부산을 썼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신산 김성덕 · 朱熹 觀書有感 · 90×150cm성: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가운데 유독 눈에 확 들어온 작품이 있었는데, 왕유(王維)의 시 ‘적우망천장작(積雨輞川莊作)’을 광초(狂草)로 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매우 아슬아슬하면서도 호쾌한 느낌이 듭니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내 의도와 달리 붓이 나를 끌고 갔다고 할까요, 그런 경계에서 나온 작품이 아닌가 할 정도로 매우 인상 깊게 본 작품입니다. 김: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썼던 글씨입니다. 이건 초안이라고 하고 욕심 없이 썼던 거 같아요. 쓰고 나서 나중에 보니까, 이번 출품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에요, 사실 이 작품을 성박사님이 알아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도 이 작품이 제일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성: 보통 우리가 ‘득의작(得意作)’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왕희지의 ‘난정서’가 왜 천하제일의 행서냐, 그 당시의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입되었기 때문이고. 안진경의 ‘제질문고’도 명품인 이유가 당시의 감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며, 손과정도 서예가 정말 잘 될 때는 우연히 마음이 동했을 때였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작가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풀어져 나왔을 때, 그때가 득의작이 나오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오늘은 붓이 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거기서 조금 오버하면 금방 티가 나거든요. 더 깊이 생각하면 오자를 내거나 글씨를 빼먹는데 그런 게 안생기고 ‘괜찮은데?’ 이 정도에서 끝까지 갔던 것 같아요. 5분 정도 손에 힘 안주고 쭉 써 내렸던 것 같아요. 신산 김성덕 · 陶潛 讀山海經 · 95×200cm 성: 아무튼 정말 좋은 작품 만들고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눈이 정말 시원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전각 분야에서도 많은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전각을 따로 출품하시지 않으셨죠? (김: 네, 따로 하진 않았습니다.) 평소 전각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 전각은 문자예술이면서도 건축적인 측면, 인문학적 측면이 포함된 종합예술이잖아요. 전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조형감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또한 전각의 7할 정도는 서예에서 나오지 않나 생각하고 있거든요. 옛날사람들이 그런 얘길 했잖아요. 서예 하는 사람은 전각가가 될 필요가 없지만 전각가는 서예가가 되어야한다고. 그 말에 동의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작가 스스로 전각을 새겨 작품에 찍을 때 안목이 틔는 것 같아요. 전각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눈이 떠지는 느낌을 받아요. 성: 그렇죠, 한 치의 공간에 천지를 담는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그 작은 공간에 글자 몇 자를 완성도 있게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간에 대한 학습, 감각이 늘어나는 것도 분명한 것 같아요. 신산 김성덕 · 杜甫 絶句 · 90×150cm성: 이번 전시의 출품작 가운데 진계유(陳繼儒)의 시구를 대련으로 쓴 작품 ‘오늘 나눈 대화가 10년의 독서보다 낫다’ 내용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저도 오늘의 대화에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서예라는 분야의 고유성, 그리고 근본에 대해서 매우 치밀하고 깊게 파고들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앞으로 작업 방향, 꿈꾸고 계시는 작품 세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행초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한학도 더 했으면 좋겠고요. 이번 작품하면서 관지 쓸 때 제 감정을 표현한 것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행초 공부를 많이 하고, 더 진지하고 깊이 공부하고 싶어요. 저는 현대적인 것은 잘 못하니까 서예 안에서 약간의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정도에서. 전시장 전경성: 끝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김: 학정(鶴亭) 이돈흥(李敦興) 선생님께서 돌아가신지 1년 조금 더 됐거든요. 선생님 계실 때 이 전시가 잡혔어요. 너무 허전하지만 지금도 옆에 계신 것처럼 느껴져요.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서예가의 정신, 서예가의 길을 앞으로 가슴 속 깊이 새기면서, 이번 작품을 선생님 영전에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2021. 3. 30글씨21 편집실<전시정보>(사)일중선생기념사업회 ≪우수작가 초대전≫신산 김성덕 서전전시기간 : 2021. 3. 18(목) ~ 3. 24(수)전시장소 : 백악미술관 1, 2층주관 : (사)일중선생기념사업회
박여 김진희 초대전 -쓰고, 파고, 찍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는데 눈을 떠 보니 아직 죽지는 않았다.여전히 한 손에는 붓을, 한 손에는 칼을 잡고 있었다.겨우 숨을 고르고번쩍살기위해서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그 정답은 어디에도 다 있어’‘처음 붓을 잡고 선을 긋는 저 어린 학동의 붓 끝에도그 놈은 숨어있어.긋는 선마다 다 정답이야. 누가 어떻게 선을 긋든 다 정답이야’” 지난 10월 8일(금)부터 10월 14일(목)까지 서예·전각가 박여 김진희展이 북촌 한옥갤러리 일백헌에서 열렸다. 지난 2015년 백악미술관 개인전 이후 6년 만의 개인전이다. 글씨21이 기획하고 일백헌이 초대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작가가 직접 쓰고, 파고, 찍은 서각전. 하지만 작가는 전시를 위한 작업의 결과물을 ‘서각’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쓰고, 새기고, 탁본한 이 세 가지 행위는 각각 독립된 예술품이다. 그리하여 쓴 것이 어떻게 새겨지며, 새겨진 것을 탁본했을 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시각적 재미가 출중하다. 작가는 글씨와 전각의 정답을 찾아 40년이 넘는 세월을 붓과 씨름하였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칼과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어디에나 다 있는 흔해 빠진 정답을 더 이상 찾지 않으려한다. 더 이상 칼을 들고 좋은 획을 찾지 않을 것이며, 붓을 들고 좋은 글씨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냥 하기로 했다. 붓과 종이의 마찰에서 확장된 획질이 나무라는 소재와 대면했을 때, 그리고 찍어 냈을 때 박여 김진희 작가만의 감성이 돋보인 전시였다. 2021. 10. 29글씨21<전시정보>박여 김진희전-쓰고, 파고, 찍고-전시기간 : 2021. 10. 8(금) ~ 10. 14(목)전시장소 : 아트센터 일백헌(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11가길 1)초대 : 일백헌기획 : 글씨21
제16회 경기대학교 서예학과 졸업작품전
전시장 전경제16회 경기대학교 서예학과 졸업작품전이 지난 11월 10일(수)부터 11월 16일(화)까지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렸다. 한국화·서예학과 학과장 / 서예전공 주임교수장지훈이번 졸업작품전의 주제는 \'붓과 종이, 손이 만나는 시간 12시 30분 15초\'로, 붓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을 시계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졸업전시준비위원장 임시현학생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통서예, 현대서예, 문인화, 전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4년간의 배움으로 축적된 전통서예 작품과 현대적 디자인 요소를 가미한 창의적인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졸업생 일동글씨21은 졸업전시준비위원회 임시현, 마지영, 이정민씨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전시 기획 의도, 서예에 대한 학생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글로 남긴다. 때 : 2021. 11. 15곳 : 갤러리 라메르Q. 졸업작품전의 제목인 ‘붓과 종이, 손이 만나는 시간 12:30:15’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이정민 : 글씨를 쓸 때 항상 같은 자세로 밤낮없이 뜨거웠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어요. 그 모습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했던 것이 시곗바늘이었습니다. 12시 30분 15초는 모양을 의미하기도, 저희 열정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임시현 :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저희가 함께한 시간을 주제에 담고자 했습니다. 많은 추억 중 어떤 시간을 담아야 할지, 어떤 시간이 저희를 잘 나타낼지 고민을 하다가 같은 모습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글씨 쓰던 모습을 담기로 했어요. 그 글씨 쓰는 모습을 시계 속 세 개의 시곗바늘로 나타냈습니다. 붓과 종이가 만나 12시 30분이 되었고, 그 붓을 손이 잡아 15초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Q. 졸업작품전을 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임시현 : 행사를 준비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큰 어려움이었어요. 마지영 : 코로나19로 공간적인 제약이 있어 교수님들에게 더 많은 피드백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워요. 과실도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학생들과 작품을 공유할 수 없던 것이 아쉽습니다. Q.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실기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어떻게 극복했는가? 이정민 : 실기 수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교수님께 의지해서 배우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비대면 수업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깨우쳤다고 생각합니다. 임시현 : 정민이 말처럼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짐으로써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기 수업은 비대면이었지만, 교수님들께 연락을 드리면 개인적으로 봐주셔서 작품 준비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이연 강채연 · 霞庭愚書竝述 · 70×140cm고울 김보경 · 인선왕후편지글 · 70×159cmQ. 졸업작품전을 찾은 관객들의 관람 분위기에 대해 임시현 : 딱딱한 졸업전시가 되고 싶지 않아서 졸업 전시 주제도 정하고 저희의 이야기를 많이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서 작가와 관객이 하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민 : 전시를 찾은 졸업생 선배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작품을 섞어서 디스플레이를 한 거 보면,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게 잘 보인다, 너희의 끈끈한 사이도 볼 수 있어서 보기 좋았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성공적인 전시였다고 생각했어요. 하담 김찬휘 · 난초 · 19×12cm, 8×14cm, 25×18cm, 11×7cm, 9×9cm율담 마지영 · 春日訪山寺 · 50×135cmQ. 졸업 후 진로가 궁금하다. 동기들의 고민이나 진로 방향에 대해 말해달라. 이정민 : 사실 이 길의 진로를 사람들에게 말하면, ‘그렇구나’가 아닌 장단점을 말해주어서 말하기가 편하지 않아요.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해도, 대학원 이후의 진로까지 물어보는 역질문을 받으니까 동기들끼리는 이런 고민을 잘 나누지 않아요. 임시현 : 동기들을 보면 폰트 회사, 박물관 등의 취업을 생각하거나 학업을 이어나가는 친구들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마지영 : 서예를 계속하고 싶은 친구들은 많겠지만, 대부분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서 다른 계열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서예는 취미로 하되, 직업은 따로 갖자는 생각을 다들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서예를 더 공부할 계획이에요. 임시현 : 그런데 동기들과 얘기해보면, 다들 붓은 평생 놓지는 않을 거라고 해요. 이정민 : 졸업 후에 여러 가지로 뻗었다가, 결국 서예라는 한 가지로 다시 만나지 않을까요? 소안 이정민 · 風竹 · 50×205cm지담 임시현 · 呑舟之魚 不游枝流 / 高飛 · 2.5×2.5cm / 1.8×2.0cmQ. 현재 대학 서예학과가 경기대학교가 유일하다. 어떤 기분인가? 마지영 : 유일한 서예학과라는 점에서 자랑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착잡하기도 하고 불안한 심정이에요. 이정민 : 만약에 저희 학과도 더 축소되어 사라진다면, 앞으로 서예를 해나갈 때 후배가 없으니 원동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후배들도 끌어줄 사람이 없다면 씁쓸할 것 같아요. 그래도 현재는 경기대학교 서예학과가 충분히 자랑스러워요. 임시현 : 저희가 서예학과를 대표하는 학생들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여원 한고은 · 刻_2 · 16x38cmQ. 학생들이 바라보는 한국 서예계의 현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달라. 임시현 : 학생으로서 느낀 바로는 그동안 너무 외톨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서예가 우리 사회에서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활발히 보여서 서예학과 학생으로 기쁘고 뿌듯합니다. 마지영 : 진로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속상하지만, 지금은 캘리그라피 등 현대서예를 통해 많은 사람이 서예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을 더 발전시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임시현 : 덧붙이자면, 서예계 사람들은 정말 유대감이 깊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서예학과 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정말 많은 사람이 도움 주셔서 감사했어요. 2021. 12. 7글씨21 <전시정보>제16회 경기대학교 서예학과 졸업작품전전시기간 : 2021. 11. 10(수) ~ 11. 16(화)전시장소 : 갤러리 라메르(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26)
2021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11월 5일(금) 온라인 개막식을 시작으로 12월 5일(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14개 시·군 28개소에서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자연을 품다’는 서예에 담긴 자연의 심오한 원리와 가치를 탐구해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올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 각국 3천여 명의 참가를 통한 서예 장르의 확장과 융합, 그리고 디지털 전시를 통한 전시의 다각화와 확장성에 있다. 서예의 발상지인 동양 삼국(한,중,일) 중 대한민국의 예향 전주에서 서예인의 가장 큰 축제가 꾸준히 열린다는 것은 분명 우리에겐 축복이다. 이에 본 행사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호암 윤점용’ 선생을 모시고 세계서예비엔날레의 의의와 각 분야별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구체적 설명을 들어보았다. 2021. 12. 14글씨21
희재 한상봉 선생 기증, <한국 근현대 서화작품전>
전시장 전경(재)강암서예학술재단(이사장 송하경)이 희재 한상봉 선생의 기증 작품으로 기획한 <한국 근현대 서화작품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 2, 3층에서 12월 23일(목)부터 29일(수)까지 일주일 동안 열렸다.신라 김유신묘지 십이지신상 탁본 · 52×82.5cm · 12폭 병풍 중 2폭철농 이기우 · 精思力踐(정사역천) · 122×31㎝우리나라 금석학 연구를 개척하고 동아시아 일대의 고서화 수집과 감식에 일가를 이룬 한상봉 선생은 청년기부터 우죽 양진니에게 글씨를 배우고, 청명 임창순으로부터 금석학을 배운 후 직접 글씨를 쓰고 작품을 수집했다. 국내외를 돌며 탁본 작업을 해 1만여점이 넘는 소장품을 축적했는데, 2년 전에는 ‘북한금석문전’을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창암 이삼만 · 行書(행서) · 32×85㎝작자 미상 · 梅庭·竹扇(매정·죽선) · 18×96㎝이번 전시에는 평생을 서예와 고서화 수집, 탁본에 매달렸던 한상봉 선생이 전주의 강암서예관에 기증한 서화와 문방사보(종이, 붓, 벼루, 먹) 130여점이 나왔다. 2차 대전 말 공습이 계속되는 도쿄의 일본인 학자 집을 찾아가 국보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찾아온 일화로 유명한 소전 손재형의 글씨를 담고 있는 10폭 병풍부터, 한상봉 선생이 직접 탁본 한 신라 김유신 묘지 12지신상, 퇴계 이황 글씨 탁본, 창암 이삼만 글씨 등 서예 작품에서부터 강암 송성용의 묵죽도, 남농 허건의 풍죽도, 해강 김규진의 국화도 등 우리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서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석촌 윤용구 · 寒林圖(한림도) · 27×32㎝구룡산인 김용진 · 춘곡 고희동 선생에게 그려준 화초도 · 33×124㎝특히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제백석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이 담긴 2장의 연하장도 주목받고 있다. 수묵과 채색이 어우러진 비슷한 크기와 유형의 작품은 경매가가 3억~5억원대에 이른다.동정 박세림 · 壽石圖(수석도) · 59×49㎝제백석(齊白石) · 一滄 兪致雄 선생께 보낸 연하장 · 23×25㎝, 33×33.5㎝강암서예학술재단 송하경 이사장은 “희재 선생은 몸소 수장하고 아끼던 한국 근현대 서화작품을 비롯해 문방사보류와 여러 서화 자료 123점을 기증하셨다.”면서 “우리 전통 서화를 수장, 연구, 창작하는 전통서화문화 지킴이”라고 선생을 소개했다.백림(白淋) · 梅花圖(매화도) · 44×74㎝백하 윤순 · 草書帖(초서첩) · 11×27㎝한상봉 선생은 이번 전시에 대해 “강암 선생은 구한말 창암 이삼만에서 이어지는 서예의 맥을 이은 분으로 문인화의 대가이셨다.”면서, “그분의 정신을 기리는 강암서예관에 전시작품이 부족한 현실을 알고 몇 년에 걸쳐 기증한 작품들을 이번에 공개하게 됐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상봉 · 김종규 · 송하경한상봉 선생의 기증품은 앞서 전주의 강암서예관에서도 지난 16일(목)부터 22일(수)까지 전시된 바 있다. 16일(목)에는 온라인 zoom으로 ‘한국 근현대 서화 학술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2022. 01. 11객원기자 한동헌 <전시정보>희재 한상봉 선생 기증<한국 근현대 서화작품전>전시기간 : 2021. 12. 23(목) ~ 12. 29(수)전시장소 : 백악미술관 2, 3층(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6)문의 : 02-734-4205
열다섯번째 솔뫼 정현식 개인전
몽필생화 <흐릿한 붓 끝에 꽃이 피다> 매 전시마다 새로운 재미와 영감을 주었던 솔뫼 정현식의 15번째 개인전 <몽필생화 - 흐릿한 붓 끝에 꽃이 피다>이 6월 30일(목)부터 7월 13일(수)까지 인사동 백악미술관 1, 2층에서 개최하였다.이번 개인전은 2019년 “나는 서예로 가출했다.” 전시 이후 3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으로 옻칠 종이 · 대마지 · 고지 · 전통 한지 등의 다양한 화선지를 시도하며, 문자 명상 · 수행 정신 · 서예인문학을 통한 철학적 사유를 밑천삼아 창작하였다.솔뫼 정현식은 한글 민체와 한문 서체의 융합으로 그 해학적인 글씨의 형상, 체계의 구성미가 돋보였던 작가로 이미 우리들에게 익숙한 작가이다. 수묵점묘(水墨點描)의 새로운 창작품을 내보이며, 지총(紙塚 : 화선지 무덤)의 불용품(不用品)인 쓰고 버려지는 화선지를 사용하고 환경문제를 시대적 공감으로 이끌어낸 작업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글씨는 의식과 함께 쓰여질때 가장 힘이 있고 솔뫼 정현식의 글씨가 그러했다. 이번 열다섯번째 개인전 ‘몽필생화’는 2개층으로 나뉘어져 진행되며 1층에서는 작가의 실험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재현이 함께 기획한 1층은 신진 작가들의 시각 그리고 감각들이 모여 솔뫼의 의식과 함께 쓰여졌다.화선지에서는 멀어졌지만 우리와는 가까워졌다. 솔뫼 정현식 작가“모든 학설은 이전 학설에 대한 비판 위에 세워진 것처럼나의 예술 작품은 숨겨놓은 깊은 이면을 들추어놓은 것들이다.철학에서의 완전한 상(相)완전한 일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를 보는 일.“-작가노트 중-작업의 바탕은 나 자신의 존경으로 부터라고 늘 주장해 온 작가의 작업물이 이번 전시에서 우리에게 어떤 멧세지를 던져 줄 것인지 또한 작가의 주장대로 늘 자기반성을 통해 성숙해 가는 글씨의 참 모습이 기대되는 전시였다. 솔뫼 정현식은 이번 <몽필생화 - 흐릿한 붓 끝에 꽃이 피다>를 포함한 총 15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또한, 솔뫼 민체, 솔뫼 한자, 손 편지, 광개토대왕비, 대한민국 최대 글자 수 등의 9종의 서체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작가가 출판한 <몽필생화>, <푸른 소를 타다>, <불서한담>, <한 말씀 꽃이 되다>를 전시기간 동안 만나볼 수 있으며 7월 5일(화) 오후 2시에는 백악미술관 2층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통한 작가의 사유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제공되었다. 2022. 6. 17글씨21 <전시정보>열다섯번째 솔뫼 정현식 개인전몽필생화 <흐릿한 붓 끝에 꽃이 피다>전시기간 : 2022. 6. 30(목) ~ 7. 13(수)전시장소 : 백악미술관 1,2층참여작가PROFILE PHOTOGRAPHY (프로필 사진)_포토그래퍼 조기석欲知島 ALBUM COVER (욕지도 앨범 커버)_뮤지션 윤훼이 (YUNHWAY)사계_솔뫼 정현식FOLDING SCREEN (병풍)_ WITH 그래피티 아티스트 마우즈(MAWZ)REBUILD / REVERSIBLE BLAZER _패션 브랜드 글린파크 (GLEANPARK)지총_솔뫼 정현식REBUILD SOFA _작가 TBOSSTAINLESS STEEL BENCH (스테인리스 스틸 벤치) 빌 공 (空)_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NICEWORKSHOP64_솔뫼 정현식EMOTICON FRAME_YDOA (윤도아)BOOK (도록)_ YUNDANTE (윤현기)
갤러리 일백헌 죽림 정웅표 초대전
재개관을 기념해 갤러리 일백헌이 주최한 죽림 정웅표 초대전이 서울 종로구 북촌 갤러리 일백헌에서 2022년 7월 20일(수)부터 7월 26(화)까지 일주일 동안 열렸다.글씨21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소품 서예 중심의 작품전으로 정웅표 작가가 책을 보며 쓴 글 가운데 엄선한 작품들로 구성했다. 작품들은 글자 한 자 한 자에 흐름이 있고 그것이 전체의 커다란 맥을 이루며 이질감 없이 표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웅표 작가는 자유자재로 서체를 혼용하고 걸림 없는 운필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에서는 유가 보다는 노장풍의 글씨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대해 정 작가는 “한 일(一)자로 그어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선이 필요한데 그 선을 만들기가 힘들다.”며, “서예도 선과 선의 연결, 빈 곳 등 공간을 충실해야 하며 서예적인 선을 이용하여 선과 공간을 중시해야 한다.” “내가 생각한 것을 자꾸 풀어내면서 사람들한테 접근하는 것, 긍정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좋은 거다 나쁜 거다 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자꾸 추구해보려고 노력한다.”고 서예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다.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정웅표 작가는 홍성고등학교에서 이윤섭 미술 교사를 만나 글씨를 배우면서 서예를 시작했다. 이후 일중(一中) 김충현 서예가를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았다.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를 역임하고 국제서예가협회 감사, 한국서예학술회 회장을 지냈으며, 세계청소년서예대전, 한국미술협회 미술대전 등을 심사했다. 현재 충청남도 청양에 머물며 서재 주변에 대숲을 만들고, 인생 만년을 대를 완상하며 작품 제작에 몰입하고 있다.2022.08.17한동헌 기자<전시정보>갤러리 일백헌죽림 정웅표 초대전전시기간 : 2022. 7. 20(수) ~ 7. 26(화)전시장소 : 갤러리 일백헌(서울 종로구 북촌로 81)문의: 010-8598-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