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한서묵연회 창립전 인터뷰
코로나19가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중에서 가장 큰 타격을 주었던 분야는 문화예술 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화 예술 종사자는 그 어둡고 답답한 터널 속에서도 내적으로 더욱 단단해져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사단법인 한국서가협회(서가협)에 소속된 중진 그룹인 ‘한서묵연회’가 기지개를 펴고 서예 애호가들에게 첫 선을 보이고자 한다. 협회 내 중진작가들로 구성된 16인의 개성 있는 작가들이 어떤 내용으로 우리에게 메세지를 던질지 사뭇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이에 아연 정숙모(한서묵연 초대회장) 회장에게 한서묵연의 창립배경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질 - 한서묵연회 창립 배경이 궁금하다.답 - 20년 전, 당시 서가협회소속의 젊은 작가였던 15명의 작가들이 모여 <청연서회>를 창립하였고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어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친목을 도모하여 한국 서단에 주목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모임이 중단되어 많이 아쉬웠는데 20년이 지난 최근에 청연서회같은 모임을 하나 다시 만들어보자는 몇몇 분들의 의견이 있었고, 그 의견들이 모아져 <한서묵연회>가 창립되었다.당시 멤버들 중에는 고인이 되거나 몇 분은 협회를 옮겼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서단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진작가가 되어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질 - 한서묵연회의 회원 기준은 무엇인가?답 - 사)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로서 자기 색이 뚜렷하고 생각이 긍적인적인 작가 그리고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면서 뜻을 함께하는 작가군으로 조직되었다. 질 - 한서묵연회가 어떤 그룹이 되길 바라나?답 - 예술가의 길은 혼자서 가야하는 참으로 외롭고 힘든 길이다.<한서묵연회>는 청년작가와 중진작가로 구성되어 전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들로 구성돠었다. 따라서 선후배 간, 지역 간의 간극을 좁혀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작가로의 길에 서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질 - 첫 창립전을 열게 되는 소회는?답 - 사실 1년 전, 창립전을 열었어야 하는데 코로나 펜데믹의 영향과 회원 간 의견 조율이 원만하지 않아 창립전을 오늘에야 열게 되었다. 그 시간이 다소 길게 느껴졌지만 오히려 서로 충분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더욱 감회가 남다르다. 이를 계기로 더 따뜻하고 더 단단해지는 모임으로 다져져서 이번 창립전이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질 - 서,화단의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면?답 - 4차산업혁명의 시대, AI의 시대라 불리는 현대에도 분명한 것은 서예가 한국미술의 한 축이라는 것이다. 서. 화단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해왔던 전통예술이 현대 서양미술에 밀려 가치를 제대로 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라면 더 치열한 작업열정과 시대정신과 현대인의 미감에 부합하는 창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려울 시기일수록 더 단단해 져야하고 창작의 열기는 더 뜨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여러 전시의 형태가 다양하게 표출되어야 하고 자아의 가치를 작품(전시)를 통해 발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울러 시대 미감을 반영하는 노력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질 - 앞으로 이그룹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생각인지?답 -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지면 회원들끼리 자주 만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1박 2일 등의 일정으로 지방 회원들과 교류도 하고 문화탐방(미술관, 박물관 등)이나 창작토론, 더 나아가 국제교류전 등을 통해 서로 배우면서 자기 작업에 대한 점검도 하고 발전의 계기도 많이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위한 그룹이기 떄문에 위에 언급한 행위들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우면서 작업의 내용을 한 단계 더 끌어 오릴 수 있는 그룹으로 진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질 - 한서묵연의 색체를 말한다면?답 - 16가지의 다양한 색을 지닌 회원들의 모임이다. 작품의 경향은 다 다르지만 작업에 임하는 이념은 하나인 것 같다. 이 서로 다른 색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자신이 지닌 빛깔이 한서묵연만의 특별한 색체로 융화되는 그룹이 되길 소망한다.. 질 - 전시에 임하는 작가의 자세와 앞으로 전개 될 전시의 방향은?답 - 이번 전시의 주제는 “이것이 서예다”이다. 회원들 모두 주제에 대한 부담감이 좀 컸던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 했던 작업에서 더 많이, 더 깊이 생각하고 고뇌하여 주제에 다가가려 했다. 앞으로의 전시도 주제가 있는 전시가 되면 좋을 것 같다.전시에 임하는 작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을 발현 할 뿐이다. 2022. 12. 06글씨21 <전시정보>한서묵연 창립전 <이것이 서예다>전시기간 : 2022. 12. 7(수) ~ 12. 13(화)전시장소 : 인사동 갤러리미래
[Interview]
원로에게 길을 묻다
근원 김양동21세기 서예문화 생태계를 말하다 김찬호(미술평론가,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20세기를 넘어 21세기 초반을 달리고 있다. 2020년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전지구적 위기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인 팬더믹(pandemic) 현상은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에 패러다임적 전환이 필요하다. 글씨 21에서 기획한 담론 21세기 지금의 시대는 서예문화 생태는 살아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논의했다. 담론의 중심은 한국 서예 원형을 통한 정체성(identity) 찾기다.燕巖 선생 文論, 210x70cm,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天風海月, 48x38cm, 1995년반야바라밀다심경, 106x60cm, 2002년학의 꿈, 37x42cm, 2012년역사 속에서 기호와 상징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우리 사이를 이어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시미술의 기호와 상징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 서예문화 발전에 많은 영감이나 내용을 채워줄 수 있다. 특히 김양동 교수님이 쓴 한국 문화의 원형을 탐색한『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양동 교수는 “서예의 출발이 획이다. 중국도 앙소문화의 도편(陶片)을 중국 한자의 시발로 보고 있고, 그 자체를 서예의 시초로 보고 있다. 그것을 보고, 한국의 서예의 기원도 광개토대왕비, 청동기 시기의 암각화 등 신석기문화에서 서예의 기원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점에서 출발했고, 빗살무늬토기에 주목한 이유다.”라고 했다. 우리 선사 문화를 통해 문자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김양동 교수는 ‘빗살’에서 ‘빛살’로의 해석의 전환을 해 놓았다. 교수님의 연구는 고고학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징검다리다. 그 하나의 징검다리가 누구나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고대문화가 오랜 삶의 누적에서 형성된 사유의 축적이라면 그 안에는 반드시 어떤 원리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 고대문화의 기원, 발생, 형성, 전개가 중요한 열쇠다. 자물쇠가 있어야 열쇠가 있고, 열쇠는 자물쇠를 열고 닫을 수 있는 기능을 했을 때 의미가 있다. 서예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 이는 서예에 대한 지평을 확장 시키는 작업이고 그런 점에서 서예 생태계에서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은 중요하다.光前啓後, 70x210cm, 2016년, 계명대학교 소장한국미의 원형, 115x152cm, 2005년筆歌墨舞, 208x144cm, 2004년八分小篆歌, 184x270cm, 2004년지금의 한국서예 모던(modern) 한가? 21세기 예술은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동시대 미술로 변화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서예는 여전히 근대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비평과 담론의 부재다. 서예의 근대성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작품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친숙한 대상을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서예 근대성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 김양동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에 書’에서 한국 근현대서예를 조명하는 글을 발표했다. 한국의 서예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서예의 근대성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미래의 서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는 서예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이다. 개념이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예술에서의 창작은 전통을 해체하면서도 원형을 추구하는 것이며, 원형을 추구하면서도 현재성을 담아내려는 노력이다. 원형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전통을 복원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 원형의 정신과 문자적 소재들이 지금 그리고 여기, 현대와 탈현대의 혼돈한 교차점에서 야기하고 있는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서예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자는데 있다. 이번 담론이 서예의 원형에 대한 탐색을 통해 서예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정체성을 찾아 미래로 나아가는 또 다른 모색의 시간이었으면 한다.고대 신(神)의 이야기, 186x95cm, 2008년象村 申欽 詩 雜興, 48x75cm, 2008년예양동교(汭陽東橋), 43.7x45cm, 2005년, 野松미술관 소장한민족문화의 시원-태양과 신조, 149x210cm, 2008년쓰는 것이 그리는 것이고, 그리는 것이 곧 쓰는 것이다. 쓴다, 그린다는 것은 하나의 퍼포먼스(performance)다. 이응노(李應魯), 남관(南寬), 오관중(吳冠中), 모네, 호안 미로, 잭슨 폴록도 다 쓰고 그린다. 쓴다, 그린다는 말보다 무엇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서예는 쓴다고 생각 한데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본다. 타성화된 현실, 화석화된 전통에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Interview]
[글씨21 담론] 김백녕과 김건표의 서예 이야기
[글씨21 담론] 김백녕과 김건표의 서예 이야기글씨21에서 기획한 2020 창작지원 프로젝트는 김백녕展을 시작으로 한달동안 진행되었다. 김백녕전은 2020. 5. 5(화) ~ 5. 11(월)까지 아트센터 일백헌에서 개최되었으며 그의 첫 개인전이다. 전시장 전경김백녕 작가는 이번 전시의 테마를 크게 3가지로 나누었다. 1. 한국의 글씨를 찾아서, 한국글씨의 조형적 다양성을 재현한 2. 글꼴 연구, 마지막으로 한국글씨의 미감을 담은 3. 서예포스터 양식 개발이다. 작가는 ‘한국의 서예, 한국의 글씨의 특징이 무엇일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 끝에 현판에서 답을 찾았다. 현판의 서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3~5자로 건물의 기능을 압축적으로 대변해야하므로 굵고 강건하며, 분명하고 큰 글씨가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와 같은 외형적 특징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절제된 중용의 미를 발견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또한, 겸손의 예를 갖추어 작가의 성명이나 직분을 밝히지 않은 채 현판을 제작한 경우도 있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현판 글씨에는 담박한 정감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작가의 기획의도를 인지하고 작품을 마주한다면 작품을 감상하는 깊이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좌 김백녕 작가 / 우 김건표 작가2020. 9. 8글씨21 편집실
[Interview]
이 작가의 思생활_삼농 김구해
夢之龜 · 游於海꿈꾸는 거북이 바다에 노닐다- 글밭 · 삼농 김구해제주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하늘 그리고 제주의 사람… 제주에 갈 때마다 나도 그곳에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때마다 아내에게 “우리 제주서 살까?” 라고 묻지만 아내는 시큰둥하다.“우리 그냥 가끔 놀러오자.” 그래, 그게 현실적이지. 직장이 가장 큰 문제이고, 익숙한 서울 생활을 바꾸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제주는 참 아름다운 도시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삼농(三農) 김구해(金龜海) 선생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80년대 이후 세대들에게는 어쩌면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당시 서단을 호령 했던 그가 제주에 터를 잡고부턴 작품을 거의 세상에 내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몇몇 작품을 보는 순간 우리는 “아~하!” 하며 무릎을 칠 것이다.세련된 필획과 조형감각은 대학시절 내 눈을 한참 머물게 했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런 작가를 제주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오늘 삼농선생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우리는 더욱 삼농선생의 작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다시, 그가 꿈꾸는 작품들을 머지않아 다시 만나보기를 기대한다.안로雁路 · 어룡魚龍 60x130cm...>>인터뷰 전문 보기(클릭)<<
[Interview]
글씨21 (사)아시아예술경영협회 박철희 대표 인터뷰
글씨21 (사)아시아예술경영협회 박철희 대표 인터뷰박철희 대표2003년 결혼과 함께 학업의 연장을 위해 중국으로 훌쩍 떠났던 박철희 대표, 전공이 서예였고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난 유학의 길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유학 생활 중 통역 아르바이트를 통해 알게 된 미술계 관련 인사들과 미술 시장을 흐름을 읽게 되었고 직접 화랑을 경영하고 작가를 키워내기도 했다.현재는 제주와 북경, 상해를 오가며 디렉트, 미술전문 경영인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가 얘기하는 미술은 아주 간단하다. 아트와 경제는 다르지 않다는 거다. 한국서예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서예가는 서예를 상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유교적 풍토에서 배우고 성장한 서예인들은 작품이 상품 취급 받는다는 게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날 서예는 밀실에서 거래되곤 한다. 시작은 어색하더라도 어쩌면 이 과정을 겪어야만 한국서예가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 봤다.이에 글씨21에서는 현재 \'제주 아시아를 그리다\' 기획전으로 분주한 박철희 대표를 만나 아시아의 미술시장과 서예의 가능성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20. 5. 13글씨21 편집실
[Interview]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기획자 배원정 학예사 단독 인터뷰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2,3층)배원정 학예사 인터뷰 ‘미술관에 書’ 제목이 참 요상하다. 마치 미술이 아닌 것이 미술관에 들어선 것처럼 말이다. 서예가 미술인가 하는 논란은 어제오늘만의 현상은 아니다. 서양에서 얘기하는 미술의 논리로는 납득이 어려운 서예만의 독특한 미술성, 문文과 필筆이 어울려 표현되는 그 어떤 접점. 그것이 서예인데 말이다.그래서 서예는 어렵다. 하는 자도 어렵고 보는 자도 어렵다. 한자 세대가 아닌 대중은 더더욱 어렵다. 정직한 문자로 형식을 표현하면 미술이 아닌 것 같고 내면의 그 무엇으로 문자성을 가진 회화적 조형감각으로 처리하면 아트가 된 것으로 우리는 미술의 정의를 내리곤 한다. 어쩌면 서가 미술이냐 아니냐의 논쟁을 따위를 떠나 서예는 이 바닥에서 어떻게 살아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쟁이 더 필요해 보인다. 더 솔직히 말하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예는 오늘날 한국의 미술시장에서 절박한 상황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현대미술관에서의 서예 특별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이번 기획전에서 서예인의 자세는 좋은 작품을 보고 감상한다 라는 보편적 시점을 넘어 서예,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반성의 시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 미술관엔 전통도 있고, 전위도 있고, 타이포그라피도 있고 캘리그라피도 영상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서예를 품위 있게 품고 가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더 넓게 안고 가는 포용의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이에 글씨21에서는 유투브 온라인 개막을 시작으로 하여 5월 6일 ~ 7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2, 3층)에서 50년 만에 열리는 서예 단독 기획전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의 기획자인 배원정 학예사를 만나 전시기획의 배경과 서예를 바라보는 솔직한 얘기들을 들어 보았다. * 본 기획전은 5월 6일부터 현장 관람이 시작되었고 온라인 신청을 우선하되 현장접수도 가능하게 됨을 공지합니다. Q.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예전을 기획하게 된 배경과 준비과정 중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첫 번째 서예 기획전이다 보니까 어떤 부분들을 조명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고민이 참 많았었고 그 가운데에서도 무엇보다 50년 만에 서예가 조명이 된 것에 대한 명분과타당성 그것을 구현하는 것에서 과연 서예가 미술인가, 그런 부분들을 해결해 나가야할 숙제도 있었고 미술관에서 서예를 조명하는 것이 응당 서예가 우리 미술의 조형의 원리이고 동아시아 회화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그런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조명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관람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첫 번째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작품선정에 대한 문제가 개인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로는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데 있어 개인의 단독적인 생각으로만 진행했던 것이 아니라 작품 선정위원회등 견해를 참고하여 진행하였는데, 그 과정에 있어 장소와 공간의 한계가 있다 보니 중요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피치 못하게 모시지 못한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가지실법한 서운함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개인적으로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번이 현대미술관에서 서예가 첫 번째 전시라는 부분을 좀 감안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이번전시는 첫 번째 서예에 관한 모색전이며 이번 전시가 단초가 되어 향후 더 좋은 원로, 현대 작가들이 점진적으로 조명될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Q. 이번전시를 통해 한국서예계와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워낙 서예계에서 오랫동안 깊은 애정을 가지고 활동했던 분들이 많아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우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느꼈던 부분들 중 일반 대중들에게 서예 전시와 관련한 계획이나 의견을 물었을 때 굉장히 거리감이 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예라고 한다면 어렵고 한문의 경우 한자 세대가 아니라 읽을 수 없는데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할지, 감상법부터 시작해서 관람객들에게 서예를 어떻게 한층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끔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곳은 미술관이기 때문에 이것이 해설적이거나 설명적이기 보다 감상적인 측면에서 전달을 해야 될 텐데 하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김기승, 애국가, 종이에 먹, 36.1x131cm, 원곡문화재단 소장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문이라는 특성이 가지고 있는 문자적인 특성상 조형성 이라는 부분에 착안을 했을 때 글자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문자 안에 가지고 있는 조형미의 부분, 장법, 결구법 등을 한 번 두 번 전시가 시도됨으로서 관람객들에게 서예는 내용을 모른다 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 감상하면 되겠구나라는 감상법부터 전달하는 것이 첫 단추를 끼우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일반인 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도 우리 서예의 아름다움, 바라보는 관점, 방법론들을 차근차근 개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석재 서병오(1862-1935), 이백李白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Q. 첫 서예전을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앞으로 풀어나갈 숙제가 있다면?->미흡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서예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현대서예가 변해가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 설사 글자를 모른다 하더라도 분명히 필선이나 획의 힘에서 가슴을 울리는 감상의 묘미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접근방법이 가능합니다. 지금 현대미술이 어느 특정한 장르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형식과 내용 모두 중요한데 그 부분들에 대한 고민들을 각개전투 하고 계신 현대 서예가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농 이기우(1921-1993), 학수천세鶴壽千歲, 종이에 먹98.5X65cm, 황창배미술관 소장그 일련의 작가 분들을 모셔놓고 경향의 분석을 통해 갈래를 타다보면 그 안에서 한국 현대서단만의 특징과 성격이 분명히 도출될 것이라 믿어요. 일본이나 중국에 비할 수 없는 한국 서예만의 가능성, 비전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들을 잘 이끌어내어 보여주는 것이 우리 미술관이 가진 숙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학정 이돈흥(1947-2020), 한만해선생시韓萬海先生詩, 2019 종이에 먹, 203.3x69cm, 학정서예연구원 소장초정 권창륜(1943-), 처화, 2016, 종이에 먹143x69cm, 개인소장Q. 이번 전시에 캘리그라피를 포함하게 된 배경과 전통서, 현대서, 캘리그라피의 상관관계에 대한 견해는?->서예하시는 분들 중에 캘리그라피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부터도 사실은 이제 한국 근현대 서예 전시를 준비하면서 첫 번째 섹션에서 프롤로그전의 성격으로 회화하고 서예의 관련성에 대해 언급을 했고요. 사실 그 섹션 안에서도 우리가 이 어떤 그동안 서예와 미술의 분계에 있어서 외부의 영역이라고 하죠. 프랑스 앵포르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일본의 전위서 하고의 관련성 속에서 진짜 우리 서예와 회화, 조각, 미술의 각 제 분야하고의 관련성이 좀 더 깊이 있게 논의가 됐어야 됐는데 그게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었어요. 그랬을 때 그 안에서 갖고 있는 어떤 담론들, 이 얘기들이 상당히 많이 있고 해결해야 될 숙제들이 많은데, 마찬가지로 캘리그라피와 타이포그라피도 지금 이미 대표님께서 방금 언급해주셨던 것처럼 일반 대중들이 캘리그라피에 환호를 하고, 굉장히 심취해있고, 또 그것을 서예보다는 친숙하게 생각하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랬을 때에 캘리그라피와 서예의 경계, 그 구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제가 오히려 역으로 여쭈고 싶어요.최민렬, 유산가, 2007, 종이에 먹, 196x106cm, 개인소장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제 국립미술관에서 이것을 서예라는 어떤 영역 안에서 포함을 시켜서 조명을 하는 데에는 일단은 역사적으로 규명이 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저희가 함부로 어떻게 IN하고, OUT하는 거는 기획자인 저에게도 리스크가 큰 부분이에요. 하지만, 이 어떤 붓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하는 작업이라는 것. 그리고 ‘캘리그라피’라는 용어가 90년대 후반에 이제 나오게 돼서, 그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이제 사용하게 된 계기가 이제 서예학과에 정식, 4년제 대학에서 정규 제도권 안에서 서예를 하셨던 분들도 캘리그라피를 하시고 또 이것을 대중성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는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데에 있어서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이거는 분명히 벌여진 현실이거든요. 비단 어떤 한국적 포스트 모더니즘, 이런 것들이 서예에 적용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그것도 캘리그라피는 일종의 정말 서예의 팝아트라고도 볼 수도 있는 거고요.이상현, 다양한 재료로 쓴 캘리그라피, 2020화선지, 나뭇가지, 칫솔, 수세미, 파뿌리, 골판지 등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디자인이라는 건 결국에 일상성, 대중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소비하고 있는 글씨, 그 경계가 점점 모아지듯 아니면 혼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있어서 어떤 치고 나가야 할 부분을 전통서예 하시는 분들이 계몽적으로 어떤 지침을, 어떤 기준을 세워서 먼저 치고 나가주실 수도 있는 부분이고. 아니면 한편으로는 계속 그 경계나 이런 것들을 깨 부시려고 하는 움직임도 저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에 캘리그라피라는 용어의 사용의 문제부터 저는 다시 점검해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고 중요한 것은 외국에서는 서예를 캘리그라피라고 번역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마치 서예가 캘리그라피랑은 구분돼서 지금 쓰게 되는 현실에 지금 우리 한국은 처해져 있다는 것이죠. 근데 이런 일련의 흐름을 무시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치열하게 한번 정말 토론을 통해서 이 경계와 어떤 각자의 나름의 의미 이것을 외면하고 서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접점을 계속 찾아나가면서 서로에게 득이 되는 그래서 정말 한글 서예의 어떤 새로운 그 무언가를 치고 나가는 그런 것도 저는 좀 기대를 해보게 돼요.김종건, 봄날, 2020, 인쇄용지에 붓펜, 노래 : 방탄소년단각고의 노력으로 이 전시를 준비하셨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전시 오픈식을 하지 못하고, 문이 닫힌 상태로 온라인 전시를 먼저 하게 됐어요. 곧 이제 문을 활짝 열고 관객들이 몰려들텐데, 많은 관객들이 와서 이 아름다운 전시를 보고 “아 서예가 이런 것이구나..“ ”서예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구나.“ 이런 큰 반향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2020. 5. 13글씨21 편집실 >>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리뷰기사 보러가기(클릭) <<
[Interview]
(사)한국서가협회 제 9대 신임이사장 백농白農 한태상 선생을 만나다
새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계절 봄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회원들의 기대에부응하여 (사)한국서가협회의 제 9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백농白農 한태상 선생을 만나 보았다. 백농白農 한태상선생은 1952년 충청남도 청양 출생의 서예가로 다양한 창작활동과 후학 양성에 노력하며, 서예술의 아름다움을 계승하고 알리기 위해 주력해 왔다.이번 한태상 선생의 인터뷰에서는 신임 이사장으로서 선생이 가진 포부와 협회가 나아가야할 방향, 작가로서 그가 지닌 서예 철학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寒竹樓 / Mixed media on canvas, 60X25cm(3EA), 2004선생은 \'한글 추상\'이라는 독특한 구상의 평면 회화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한자’가 아닌 ‘한글’을 바탕으로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선생의 작품들은 문자 요소들이 해체되어 다시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다. 선과 점의 결합으로 모음이 형성되는 기본 원리를 가진 한글이야말로 선생이 추구하는 서예의 현대화, 추상서예에 가장 적합한 문자라고 할 수 있다. 자·모음series08-08-08 / Mixed media on canvas, 17.5X25cm, 2008자·모음Series16-08-07 / Mixed media on canvas, 120X20cm, 2016올해로 서른살을 맞이한 젊은 (사)한국서가협회가 한태상 신임 이사장과 더불어 안정과 화합 원칙이 공존하는 상생을 바탕으로 21세기 한국서단의 새로운 지각변동을 가져올 震源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0. 4. 13글씨21 편집실 백농(白農) 한태상(韓泰相, HAN TAI-SANG)출생 : 1952년 학력사항 :서울교육대학교 졸업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북경사범대학교 영상미디어대학원 박사과정 경력사항:1988년 제7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1987년 제6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1973년, 1976년, 1977년, 1978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4회 입선2008 서울서예비엔날레2010 일본 동경 Kyu kyo Do Gallery2011 KARLSRUHE2011 KCAF2012 제주현대미술관2013-17 전주세계비엔날레2013 베이징비엔날레2013 성도중국서법국제대전2014 원곡서예상 수상2015 북경 중국국제서예교류전2015 중국남창국제아트페어2015 Hong Kong Art Fair2016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개인전2017 미술세계상 평면부분 수상작가300여회 국내외 초대전 참여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초대작가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전) 4대 한국서가협회 부회장한국서가협회 창립 등기이사한국국제서법연맹 공동회장현) 서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서울교육대학교 미술과 교수역임,옥조근정 훈장 수훈현) 9대 한국서가협회 이사장
[Interview]
원로에게 길을 묻다
우산 송하경1942년, 전라북도 김제 출생인 우산 송하경 선생은 서예가이자 한학자인 강암 송성용(1913~1999) 선생의 자녀 4남 2녀 중 차남이다. 그는 서예와 전각, 이론과 비평, 교육 등에서 철두철미한 철학으로 임하며 후학들에게 큰 교감이 되어왔다. 이번 글씨21의 ‘원로에게 길을 묻다’에서는 송하경 선생이 평생을 몸담아온 서예인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아버지 강암 송성용 선생, 어머니 이도남 부인과송하경 선생과 형제들1964년 명륜당 앞에서 (맨좌측 송하경 선생)송하경 선생께서 주장하신 ‘신속미주의’가 추구하는 서예에 대해, 또 개인전시회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 선생의 철학에세이 『내 생각이 고루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누구보다 민족의식이 강하셨고, 허투루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강암 송성용 선생에 대한 추억을 들어볼 수 있었다. “서예작품 속에는 스토리텔링이 들어있어야 한다.” 빼곡이 진열된 그의 서재에 책만큼이나 송하경 선생의 몸과 마음속에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철학은 그의 손과 붓을 통해 한 자 한 자 서예작품으로 전해지며, 그것은 우리에게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20. 3. 6글씨21 편집실 송하경(宋河璟 Song Ha kyung / 友山) 출생 | 1942-10-14, 전라북도 김제분야 | 서예/전각/서각, 비평/이론, 교육 학력사항1980 ~ 1986국립대만사범대 국문연구소 문학박사1968 ~ 1971국립대만대 철학연구소 문학석사1961 ~ 1965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동양철학과 문학사1957 ~ 1960남성고등학교 경력사항2017.03 ~ 0000.00(재) 강암서예학술재단 이사장 (현직)2011.04 ~ 2013.04문화재청 문화재위원2008.03 ~ 0000.00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명예교수 (현직)2006.02 ~ 2016.01한국 서예비평학회 제1~4대 회장1999.10 ~ 2003.09한국 동양예술학회 제1·2대 회장1998.08 ~ 2007.07동아시아 문화포럼 대표, 『동아시아 문화와 사상』 편집인 겸 주간1998.02 ~ 2005.05한국서예학회 제1대 회장1998.02 ~ 2003.01성균관대학교 박물관장1996.08 ~ 2002.09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제1·2·3대 조직위원장1995.04 ~ 1999.03한국양명학회 제1·2대 회장1991.02 ~ 1993.01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겸 유학대학원장1986.02 ~ 1989.01(사)한국미술협회 이사 (서예분과)1985.03 ~ 2008.03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과 부교수,교수1974.04 ~ 1985.02전북대학교 교양학부, 문과대학 철학과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전시이력개인전2008 ~ 0000개인전, 갤러리 라메르2003 ~ 0000개인전, 갤러리 라메르1996 ~ 0000개인전, 동아일보 일민문화관1987 ~ 0000개인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몬슨 화랑(구 삼일당)1983 ~ 0000개인전, 전북예술회관1979 ~ 0000개인전, 전북여성회관 단체전2018 ~ 0000한·일·중 서예술 2018 평화 메세지전, 한국미술관 / 강암연묵회 창립 50주년 기념전, 전주소리문화의전당2017 ~ 0000오늘의 한국 서예전,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전주소리문화의전당2016 ~ 0000성균서도회 100회 기념전, 한국미술관 / 제32회 국제난정필회 경주전, 경주예술의전당2015 ~ 0000남·북코리아 미술대전, 한국미술관2013 ~ 0000중·한서화 명가전, 주한중국문화원2012 ~ 0000한·중수교 20주년 기념 한·중명가전, 한국미술관 수상내역1989 ~ 0000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1982 ~ 0000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1965 ~ 1981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8회 입선(1965,1971,1974,1975,1977,1978,1980,1981), 1회 특선(1979) 저서2015『내 생각이 고루한가』, 도서출판 다운샘2009『세계화바람 앞의 동아시아 정신』, 도서출판 다운샘2003『서예미학과 신서예정신』, 도서출판 다운샘2001『조선조 성리철학의 구조적 탐구』, 성균관대 출판부 (공저)1996『신서예시대』, 도서출판 불이1984『중국철학사』, 일지사 논문/기고2014\"김용옥의 『석도화론 료법장』번역에 대한 비판적 신역\",서예비평 13호, 한국서예비평학회2013\"『석도화론 일획장 제1』 번역상의 몇가지 의견\", 서예비평 12호2012\"걸레 중광은 무엇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가\", 서예비평 10호2008\"소전 손재형의 서예세계\", 서예비평 3호2008\"추사의 원교 『서결』 비평에 대한 비평\", 서예비평 2호2007\"동강 조수호의 접의 용필미학과 속미적 예술세계\", 서예비평 1호2007\"한국 현대 서예의 비판적 회고\", 서예와 문화 2호,
[Interview]
<특집>
대륙을 이끈 서법가들引领大陆的书法家们 - 상해 · 항주 2020. 1. 29글씨21 편집실...>>>인터뷰 전문 보기(클릭)<<<
[Interview]
원로에게 길을 묻다
규당 조종숙 오랜 세월 자신만의 서예 세계 구축에 일념을 다한 규당 조종숙 선생은 특히 한글서예의 맥을 이어오며 열정을 쏟았다. 반세기에 걸친 시간 동안 한문과 한글을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세계를 보여주었으며, 현재는 한글서예의 일가를 이루고, 후학 양성에 앞장서는 등 원로서예가로서 후학들에게 큰 모범이 되고 있다. 규당 조종숙 선생은 동방연서회에 입문하면서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본격적인 서예 공부를 시작한 규당 조종숙 선생은 안진경의 해서를 시작으로 몇 년을 이어 한문서예 공부를 해 나갔다. 당시 일중 선생의 가르침에는 체본을 써주는 것을 일절 없었으며, 스스로 공부하고 연습하며 깨닫도록 하는 방식으로 지금에 돌이켜보면 정말 큰 공부였다고 한다. 단단한 기초를 다지며 국전에 4번을 입선한 뒤, 특선을 목표로 했지만 5번을 낙선하며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멈춰 서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으로 입선의 고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이 열리게 되고, 규당 선생은 그동안 한문서예를 공부해 온 필력으로 한글서예에 대담하게 전향한다. 공모전 출품을 통해 한글서예의 기본기를 연마하였고, 초대 작가가 된 후에는 규당 조종숙 선생만의 한글서예 길을 걷게 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원숙한 점과 획이 드러나며 고전 연구에 대한 깊이를 볼 수 있었다. 밝은 표정만큼이나 따뜻하고 맑은 마음씨를 지닌 규당 선생께서는 “반세기가 넘도록 붓과 함께 해왔건만 첫 번째 개인전 때나 지금이나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늘 연구하고 공부를 했음에도 부족함에 대한 갈증으로 지금의 서예 일가를 이룬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버지의 명필 내력을 이어받아 펜 글씨를 곧잘 쓰던 소녀에서 결혼 후 서예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으로 고군분투해 온 지난 세월을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는 인터뷰였다. 2019. 12. 11글씨21 편집실 규당 조종숙圭堂 趙琮淑 아호 : 규당, 솔빛 경력제3회 신인미술전람회 장려상 수상(1964년)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6회 입선(1968-1980, 한문)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수상(1982, 한글)제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1983, 한글)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초대작가한국미술협회 분과위원, 이사, 부이사장 역임(현, 고문)세종한글큰뜻모임 1,2대 회장 역임추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임한국예문회 1,2,3대 회장 역임(현, 명예회장)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국제서법예술연합회 부이사장국제서예가협회 고문기독교미술인인선교회 회장 역임주부클럽연합회 회장 역임민주평통 자문위원 역임원로서예문인화 총연합회 부회장동방연서회 이사 역임(현, 여초기념사업회 고문)일중기념사업회 이사 역임(현, 고문)제주한글사랑연합회 고문서예서예문인화총연합회 고문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및 운영위원장 역임동아미술제 심사위원장 역임단원미술제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역임남농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및 운영위원 역임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한국전 운영위원장 역임서울시 미술장식 심의위원 역임경희대 교육대학원, 서울교육대, 성균관대 유림회, 중앙문화센터, 주부클럽연합회 서예강사 역임미술협회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 역임규당미술관 운영규연회회원 지도 수상신사임당상 추대(1990)외솔상(최현배) 수상(2003)미술문화상 수상(미술문화사 2006)예총예술문화대상 수상(2007)올림픽봉사상(1988) 전시예술의전당 개관기념 초대출품예술의전당 100인전 초대출품서울시립미술관 개관기념전 초대출품한중건교기념 서화초대전 초대출품경향신문사 주관 ‘고뇌하는 서예가’ 초대출품국제서법전(중국, 일본, 싱가폴, 대만 등)순회전 출품미국(샌프란시스코) 초대출품항주 서령인사 초대전출품중국 왕희지탄신기념전 초대출품일본 每日신문60주년기념전 초대출품전국세계서예비엔날레 초대출품(전주)한일월드켬기념 필묵정신전(예술의전당)서울서예비엔날레 초대출품(서울시립미술관)하이서울 세계서예축제 초대출품(서울)한국여성원로서예5인전(물파공간)북경서예포럼전(주석으로 참가)북경태묵국제전(한국 대표)북경국제서법비엔날레(북경 고궁미술관)북경올림픽기념세계전 초대출품세종한글큰뜻모임 전국순회전 개최(광주, 전주, 대전, 대구, 제주)세종한글큰뜻모임국제전 개최(미국, 중국)제주학술세미나 초청강사(주제,추사선생의 예술과 생애)제1회 개인전(2000년, 백악미술관)삼인전(현병찬, 민이식, 조종숙) 제주전제주 규당미술관 개관 기념전 개최 저서우리글 서체를 찾아서楷書千字文(龍眞卿)한글서체 다정체 제자한글글꼴개발 다정체 폰트 제작